관계에서 상처 덜 받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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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는 것은 누구나에게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나 실제 삶에서는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일상이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불평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는데, 매니저가 나보다 말을 더 잘하고 사회성이 더 좋은,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더 인정하고 칭찬을 하며 보상을 더 주는 것을 지켜볼 때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호주의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국 사람에 비해서 인도에서 온 사람들처럼 영어를 더 잘 함으로, 또는 소통을 더 잘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좋은 기회들을 오히려 얻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경험한 분들은 상대적으로 억울함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뿐인가, 나는 정말 나쁜 의도 없이 상대방에게 솔직한 조언을 주었을 때, 상대는 그 조언을 기쁘게 생각하기 보다는 상처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우리는 보게 된다. 조언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은 그것을 무례하다고 생각을 하거나, 조언을 공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염려와 사랑으로 솔직한 조언을 주고 상대방의 반응으로 인해 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기 위해 밤 낮으로 일을 하면서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었지만, 아이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모가 자신들과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상처를 받았고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아주 많다. 그 외, 결혼을 하고 시댁 식구들에게 잘 해주려고 했다가 갈 수록 당연히 여기는 태도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고, 반대로 며느리와 자녀에게 아주 헌신적으로 잘 해 주었지만 그것으로 감사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섭섭해지는 경우가 삶에는 흔히 일어난다. 가끔은 직접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거나, 여성 혐오의 말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비난할 때도, 우리는 분노가 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는 누구나의 삶에서 예외가 아니고 늘 주고 받게 되는데, 이런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는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받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쥐트도이체 차이통’이라는 독일의 일간지에서 미국의 모건 프리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거기에서 한 기자가 “당신에게 내가 ‘니그로 (흑인을 비하하는 욕)’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죠?”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프리먼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기자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라고 다시 질문을 했을 때 프리먼은 “당신이 나를 ‘니그로’ 라고 부르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지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관심을 끊어 버림으로써 문제를 갖고 있는 당신을 혼자 내버려 줄 것입니다. 물론 행동으로 나를 공격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그러면 단언컨대, 나 자신을 방어할 겁니다."
위의 예는, 상처를 받지 않도록 무가치한 것에는 관심을 꺼버리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상처가 되는 사건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상처를 더 잘 받는 사람들은 타인의 한 마디 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리고 영향을 받아 힘들어 한다. 나에 대해서 온전한 이해함이 없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에 그렇게 비중을 많이 둘 필요가 있을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에 상처를 받지 않고 건강해지기 위해 우리는 때로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너무 많은 비중이나 가치를 둘 필요가 없다. 앞에 나온 모건 프리먼처럼 말이다.
얼마 전, 9시 30분에 일을 시작하는데 어떤 분이 9시에만 시간이 된다고 해서 순전히 그 분을 위해 9시에 미팅을 하기로 했다. 그 분과의 미팅을 위해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출발해서 약속 장소에 가는 노력을 했지만 조금 늦었다. 6분 정도 늦게 미팅을 시작했는데 상대방이 늦은 것에 대해서 바로 지적을 하면서 전문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상처로 다가오는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미팅을 마치고 생각을 다시하면서, 상대는 내가 배려한 상황을 알지 못했기에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이해의 태도를 가지자, 훨씬 마음이 편해졌고, 더 이상 억울하거나 상처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나의 상황에 대해서 나의 노력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말에 너무 많은 비중이나 가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타인의 반응에 관심을 줄이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피해의식’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상처를 덜 받도록 도움을 준다. 만약 타인들 모두는 가해자이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나만 왜 이렇게 불쌍하고 힘들게 그리고 어렵게 살아야 하지? 라고 생각을 하면, 나는 늘 피해자로 살아가게 되고 타인들은 가해자로 느낄 수 밖에 없게 되고, 늘 손해 보고 상처받고 어려워하는 나는 불쌍하고 늘 당하는 사람이 된다. 물론,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많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민감한 기질인데 그것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차려 돌봄을 주지 못한 경우에,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의 부분이 더 많이 개발이 되었을 수도 있다. 자기 연민은 한 때는 자기를 위로해 주는 수단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피해의식으로 발전되어 많은 상황에서 나는 늘 피해자이고, 불쌍하고, 손해봤고, 희생했다. 타인들은 가해자이며 그럼에도 잘 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때 삶은 더 이상 기쁘지 않고 나는 수동적으로 되며,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는 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피해의식이나 자기 연민 대신 나는 상처를 입었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라고 하는 생각,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상처를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다 경험하고 살아간다고 하는,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상처를 주고 받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데 도움이 된다. 비록, 나는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줄 때도 있지만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니 그것을 수용하며 나의 상처는 자기 연민 대신 자기 위로로 싸매 주고, 이겨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삶의 태도다. 그럴 때 우리는 더 회복되고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삶의 가치를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상처에 반응하는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나를 귀하게 여기고 동시에 타인에 대한 관심을 조금 끄고 나의 가치에 더 많이 집중하자. 그래서 나의 가치의 실현을 이루며, 그것으로 기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세상 가운데 힘을 내서 살아가자.
호주기독교대학 서미진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