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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QLD KOREAN LIFE &amp;gt; 전문가 칼럼 &amp;gt; 상담 칼럼</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일</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2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한 청년에게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만 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어쩌다 마음의 크기가 손가락만큼 작아졌을까. 그는 최근 관계의 실패를 경험한 뒤 깊이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그만큼 위축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 중년 남성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 스스로를 속이 좁은 사람처럼 느낀다고 했다. 아마 그는 살아오면서 마음을 돌보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채 수많은 스트레스와 상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쌓아 두었기에 이제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의 마음은 때로 태평양처럼 깊고 넓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콩알만큼 작아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은 넓어서 좋지 않은 경험이나 감정을 한편에 밀어 넣어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눌러 담아 둔 부정적 감정과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건드려지면 다시 떠오른다. 특히 변화가 많은 청소년기나 삶의 전환점이 되는 중년기에 이러한 감정들이 드러나기 쉽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음의 회복에 시간과 노력을 들인 아이들은 점차 더 단단해지고 성품이 성숙해지며 성장했다. 반면 세상적 성공이나 즉각적인 즐거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아이는 어려움과 유혹 앞에서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아는 교수님의 가족에게 큰 병환이 잇따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담담하게 모든 과정을 감당해 나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그분에게는 이른바 ‘마음의 탄성’, 즉 회복탄력성이 있었다. 어려움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글을 쓰며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해 오신 덕분일 것이다. 쌓여 온 마음의 힘이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 셈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요즘 “청년들은 마음이 약하다”는 말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인생의 많은 굴곡을 지나온 세대의 눈에는 청년들의 어려움이 작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청년들이 지나치게 많은 미디어와 자극에 노출되어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쉽고 빠른 만족에 익숙해질수록 인내와 성찰의 시간은 줄어든다. 마음의 근력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채 도전에 맞서면 쉽게 지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그렇다면 마음의 근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b></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첫째, 일기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b> 글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도 세울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둘째,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b>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을 방치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생각을 정돈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생각이 정리되면 마음도 가벼워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셋째, 뇌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b> 블루베리 같은 베리류, 호두, 신선한 채소, 오메가3가 풍부한 음식은 뇌 기능을 돕는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은 뇌를 지치게 하고 결국 마음의 힘도 약화시킨다. 마음의 근력은 신체 건강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넷째,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b>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정리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특히 렘(REM) 수면 단계에서 우리는 하루의 경험과 감정을 정리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도 어려워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다섯째, 긍정적인 태도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b>삶에는 늘 변화와 어려움이 따른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지만, 부정적인 시각에 머물면 어려움에 계속 초점을 맞추며 스스로를 소진하게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넉넉히 이겨 낼 힘을 기르게 된다. <b>마음의 근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작은 성찰과 훈련이 쌓이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b></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02 Apr 2026 08:13:58 +1000</dc:date>
</item>


<item>
<title>스트레스는 적이 아니라 신호다</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23</link>
<description><![CDATA[<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 검사를 하다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자주 접하게 된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어떤
사람은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과 업무를 비교적 잘 감당하며 살아간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반면
같은 수준의 점수를 받고도 이미 탈진 상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며 깊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사람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공통적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중요한 위험 신호라고 볼 수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r /></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흥미로운 것은 반대로 스트레스 점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하나는 기질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향을 가진 경우이고<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다른 하나는 변화가 적고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실제로 한 스트레스 검사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보인 사람이 있었는데<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살펴보니<span lang="en-us" xml:lang="en-us"> 10</span>년 이상 같은 직종에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가정환경 역시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이러한 삶은 안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동시에 도전과 성장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을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필자 역시 비교적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과거에는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쉽게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어린 시절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수치심으로 이어졌던 기억도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어떤 사람에게는 사소한 말일 수 있지만<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예민한 사람에게는 작은 언어적 자극도 깊은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만큼
말은 사람의 마음과 정서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시간이 흐르면서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감정 조절 능력도 이전보다 나아졌지만<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예민함은 여전히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러나 예민함 자체가 약점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것은 하나의 기질적 특성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태도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왜 나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잘 받을까<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라고 자책하기보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나는 상황과 감정에 더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예민함은 공감 능력과 책임감<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관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따라서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스트레스 환경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변화가
지나치게 많은 환경을 피하거나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동시에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노력도 중요하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작은 도전에서 시작해 점차 범위를 넓혀 가거나<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또한 스트레스는 단지 마음의 문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인간은 정서적<span lang="en-us" style="font-family:Calibri, sans-serif;" xml:lang="en-us">·</span>신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몸에도 다양한 신호로 나타난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규칙적인 운동과 같은 기본적인 자기돌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p>
<p></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는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삶의 일부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문제는
스트레스의 존재가 아니라<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하는 데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b>자신의 스트레스 신호를 읽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을 오래<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그리고 건강하게
걸어갈 수 있다<span lang="en-us" xml:lang="en-us">.</span></b><span lang="en-us" xml:lang="en-us"></span></p>
<p class="MsoNormal" style="text-align:justify;"><b><span lang="en-us" xml:lang="en-us"> </span></b></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Wed, 18 Mar 2026 23:13:46 +1000</dc:date>
</item>


<item>
<title>혼잣말이 바꾸는 불안의 온도</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22</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지인의 권유로 난생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기본 자세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숙련자들 사이에 서 있으니 긴장이 앞섰다. 스윙은 번번이 빗나갔고, 공은 힘없이 굴러가기 일쑤였다. 그때 무심코 나온 혼잣말은 이랬다. “왜 이렇게 안 되지?”, “또 못 쳤네”, “나는 왜 이 모양일까.”</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돌이켜보면, 그 순간 나를 위축시킨 것은 서툰 실력보다도 스스로를 향한 냉혹한 평가였다. 실수는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내 혼잣말은 그것을 ‘능력 부족’이나 ‘실패’로 규정하고 있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에게 건네는 말의 태도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인간은 하루 종일 자신과 대화하며 살아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끊임없이 자신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그 혼잣말은 때로 약이 되지만, 때로 독이 된다.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언어는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도전을 지속하게 하지만, 반복되는 자기 비난과 부정적 단정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행동을 위축시킨다. 혼잣말은 감정의 온도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조절 장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 청년은 연인과의 이별 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점차 확신이 되었고, 불안은 커졌으며, 그는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현실이 그를 고립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반복해 들려준 말이 그의 세계를 좁히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행동을 결정한다는 단순한 원리가 여기에 적용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오늘날 불안은 가장 흔히 경험되는 정신적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 기후 변화와 재난, 국제 분쟁과 사회적 갈등은 일상의 안정감을 흔든다. 특히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 세대는 더 큰 불확실성 앞에 서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 출발점이 바로 ‘혼잣말’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불안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혼잣말의 방법</b>은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첫째, 인칭을 바꾸는 것이다.</b> “나는 실패했다” 대신 “○○는 실패했다” 혹은 “너는 실패했다”라고 표현해 보면 심리적 거리가 생겨 감정의 강도가 완화된다. 상황과 자아를 분리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둘째, 시제를 바꾸는 것이다.</b> 불안이 고조될 때 우리는 “지금 숨을 못 쉬겠다”, “지금 너무 불안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매우 불안했다”와 같이 과거형으로 전환하면, 뇌는 최고조의 순간이 이미 지나갔다고 인식하며 긴장을 낮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셋째, 단정 대신 질문으로 전환하는 것이다.</b>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단정은 사고를 닫아 버린다. 반면 “정말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사고를 열어 두고, 뇌가 자연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찾도록 한다. 흑백 논리를 완화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넷째, 자기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b> 부정적 혼잣말은 이미 상처받은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더한다. 대신 “괜찮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애써 왔다”와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야 한다. 자기 자비는 자기 연민과 달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을 지지하는 태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다섯째,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b> “나는 불안하다”는 막연한 표현은 두려움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멀어질까 봐 불안하다”, “경제적 불안정이 염려된다”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나고 현실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여섯째, 문제 중심이 아닌 해결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한다.</b> “나는 왜 이렇게 잘못이 많은가”라는 자책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대신 “지금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실천이 반복되면 자기 효능감이 회복되고, 불안은 점차 완화된다. 초점이 과거 실수에서 미래 가능성으로 이동할 때 정서의 흐름도 바뀐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혼잣말은 사소해 보이지만 반복되면 사고 습관이 되고, 결국 삶의 태도가 된다. 우리는 외부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무너뜨리는 언어 대신, 자신을 세우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12 Mar 2026 10:01:23 +1000</dc:date>
</item>


<item>
<title>말보다 마음을 먼저 듣는 대화</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21</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우리 가족 모두가 나를 싫어해.”</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어느 날 저녁, 가족회의를 위해 잠시 거실에 모이자고 하자 한 십대 자녀가 이렇게 말한 뒤 울먹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예상치 못한 말에 가족들은 당황했다. 갈등의 시작은 비교적 단순했다. 동생의 티셔츠를 허락 없이 입고 외출한 일이 발단이었다. 동생이 화를 냈고, 다른 형제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여러 사람의 지적을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행동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관계 전체의 거절’로 받아들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잘못은 분명했다. 타인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한 행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왜 이 일은 단순한 훈계에서 멈추지 않고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결론으로까지 확장되었을까.</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다음 날, 감정이 가라앉은 뒤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맥락이 드러났다. 아이는 그날 학교에서 친구와의 관계 문제로 이미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고, 미묘한 소외감이 이어졌으며, 속으로는 억울함과 불안이 쌓여 있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정서적 에너지는 상당히 소진된 상태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런 상황에서 집에 돌아와 여러 형제의 말을 동시에 듣게 되자, 그것은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집단적 비난’처럼 느껴졌다. 이미 마음속에 쌓여 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A였지만, 실제로 감정을 폭발시킨 것은 그 이전에 누적된 B라는 맥락이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우리는 흔히 눈앞의 사건만 본다. 그러나 감정은 언제나 축적된 맥락 위에서 반응한다. 이미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도 훨씬 크게 체감된다. 평소라면 넘길 수 있었던 말도 그날은 날카로운 공격처럼 들릴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는 이러한 반응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래의 평가와 가족의 시선은 생각보다 깊이 각인된다. 논리적으로는 과장된 해석일지라도, 당사자의 정서 안에서는 매우 실제적인 경험이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갈등 상황에서 어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실을 정리하는 것이다. “잘못했잖아.” “규칙을 어겼잖아.” “사과해야지.” 물론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규칙과 한계를 세우는 일은 가정 안에서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말의 이면에 있는 감정을 읽어내는 태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모두가 나를 싫어해”라는 말은 객관적 사실을 진술한 문장이라기보다, 주관적 체감을 표현한 문장일 가능성이 크다. 그 안에는 “나는 지금 상처받았다”, “나는 혼자인 느낌이다”, “나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정서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감정은 종종 극단적인 언어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대개 충족되지 않은 심리적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소속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공정하게 대우받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또 하나 우리가 자주 놓치는 부분은 사건의 ‘중요도 차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체감하는 무게는 크게 다르다. 나에게는 2나 3 정도의 일이라도 상대에게는 8이나 9의 강도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재 배송이 며칠 늦는 일은 행정 담당자에게는 일정 조정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학생에게는 학습의 출발이 지연되는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냐”는 말이 쉽게 나오고, 그 한마디가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관계를 살리는 질문은 다르다. “왜 그렇게 예민하니”가 아니라 “이 일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크게 느껴졌습니까”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상대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신호가 된다. 이해하려는 태도는 방어를 낮추고, 대화의 가능성을 넓힌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감정이 격해진 순간에는 인지적 교정보다 정서적 안정이 먼저다. 이성적 설명은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느꼈구나”, “많이 속상했겠구나”라는 한 문장은 상대의 마음에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이는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인정하는 태도다. 공감이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책임과 재해석의 논의가 가능해진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가족 안에서도, 부부 사이에서도, 직장과 사회에서도 의견 충돌은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말의 표면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그 아래에 흐르는 감정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태도는 관계의 방향을 바꾼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어쩌면 관계를 지키는 힘은 설득의 기술이나 논리의 날카로움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누군가의 과장된 말 뒤에 숨은 상처를 읽어내고, 그 마음을 먼저 붙잡아 주는 데 있을 것이다. 사실을 바로잡기 전에 마음을 먼저 듣는 일, 그것이 갈등을 단절이 아니라 성숙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Fri, 06 Mar 2026 07:23:01 +1000</dc:date>
</item>


<item>
<title>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20</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십대 아이가 말을 잘 하지 않다 보니, 아이의 반응을 얻기 위해 가끔은 일부러 웃기는 행동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칭찬을 건넬 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엄마의 의도는 분명 아이와의 관계를 더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이나 상황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 좋은 의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이를 판단했던 것 같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어제 호주 카리스대학에서 사랑의 심리학을 강의하신 김기환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의도가 좋으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도가 좋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하며 다가갈 때 문제가 풀리고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내 의도는 좋은데 상대가 왜 몰라줄까?’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가까운 관계에서는 비난까지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TV 다큐멘터리에서 방에서 1년 동안 나오지 않는 자녀의 사례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는 참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매일 음식을 사서 방 앞에 두고, 답이 없으면 편지까지 써두는 정성스러운 아빠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딸은 공부도 잘하고 의대 진학을 꿈꿀 만큼 똑똑했지만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아버지는 딸을 영어 연수에 보내고, 돌아오면 재수를 통해 다시 의대를 준비하길 바랐다. 그런데 딸은 연수에서 돌아온 날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부모의 마음으로 보면 아버지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아이를 사랑하고, 공부를 지원하고, 좋은 대학에 가도록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댓글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비난했다. 아버지의 집착과 기대가 아이의 정신 건강과 삶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결과가 아이에게 고통으로 돌아왔다면 그 의도는 잘못된 것이며, 아이에게 상처 준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사과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관계에서는 이런 ‘의도와 결과의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의도가 좋았더라도 결과가 나빴다면, “내가 옳다”를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느낀 고통을 이해하고 미안함을 표현할 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언젠가 남편이 물었다. “좋은 의도로 돌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돌에 다른 사람이 맞아 아프다고 하면 사과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 ‘돌을 가지고 노는 걸 알면서 가까이 온 사람이 잘못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론은 명확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라도, 그 행동으로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면 사과해야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좋은 의도로 했으니 내 행동은 옳다”라고 말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이런 의도로 했는데, 그럼에도 네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해”라고 말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대로 “나는 좋은 의도로 했는데, 그걸 이해 못하는 네가 문제야”라고 한다면 관계는 ‘누가 옳은가’의 싸움으로 깊어지고 만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상황은 누구나 바라는 바다. 예를 들어, 아내가 남편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했고 남편이 제시간에 와서 함께 즐겁게 식사한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내가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남편이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외식으로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다. 지혜로운 남편이라면 아내의 마음을 생각해 외식을 거절하거나, 퇴근 전에 도시락을 먹고 올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이런 배려는 가정을 더 평온하게 만든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현실에서는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정성껏 도시락을 싸줬는데 먹지 않고 왔다면, “왜 안 먹었어! 이제 도시락 안 싸줄 거야!”라고 공격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걸 싸주면 더 잘 먹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관계를 더 좋게 만든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고집은 좋은 의도라는 이름 아래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삶은 예기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좋은 의도에 좋은 결과가 오면 감사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결과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켜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05 Mar 2026 22:49:25 +1000</dc:date>
</item>


<item>
<title>공동체의 중요성</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9</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6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필자는 호주에서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한국처럼 몸조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 늘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막내인 여섯째를 낳았을 때, 호주 교회에서 식사를 집으로 배달해 주었다. 요청한 적도 없었는데 누군가가 음식을 준비해 가져다준 것이다. 우리 가족이 평소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은 아니었지만, 한 끼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생각해 주었다는 사실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공동체가 여전히 중요하다. 요즘 시대는 예전만큼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고, 개인주의가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사람에게 묻기보다 ChatGPT나 Gemini에게 묻고, 그 답을 더 신뢰한다. 외동으로 자란 젊은이들은 혼자 살아가는 것에 너무 익숙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의 욕구와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과의 따뜻한 소통도 직접 목소리를 듣기보다 메시지로 하는 것을 더 편안해한다. 그래서 공동체의 필요성이나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사람들은 정말 공동체가 필요 없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물론 예전보다 혼자 살아도 덜 외로운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더 큰 힘을 얻는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요즘의 공동주택 형태다. 예전에는 일자형 복도에 방이 나란히 있는 구조가 많았지만,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되, 공동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서로 소통하고 연대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집들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은 가족이 아니어도 타인과 함께 소통하며 사는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필자는 오랫동안 캔버라에서 살며 상담사로 일했다. 그곳에서는 대면 상담도 있었지만 온라인 상담이 상당히 많았다. 온라인 상담의 장점도 많아 익숙해져 있었고, 내담자들도 온라인 상담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드니로 오니 상황이 달랐다. 상담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일단 직접 만나서 상담을 시작하길 원했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숨결을 느끼고, 눈을 맞추는 것이 내담자들에게 훨씬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신뢰가 쌓인 후에는 온라인으로 전환해도 괜찮아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대면 상담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필요로 하며, 특히 마음이 힘들 때는 그 접촉과 위로가 큰 힘이 된다. 그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무실을 찾아오거나, 때로는 집으로 방문하기도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불안으로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남자친구나 배우자가 자신을 안아주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내담자가 남자친구와 헤어져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말했을 때, 안타까움과 함께 그를 대신해 품어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이 또 다른 따뜻한 인간 한 사람으로 인해 치유되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든, 남편이든, 사랑하는 이들을 많이 안아주고 격려하며 따뜻하게 해주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서로의 연대감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이 혼자 살도록 디자인하지 않으시고,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하셨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대로 살지 못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며 개인주의로 기울어졌다. 그 결과 깊은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고독과 외로움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중요한 이슈다. 그래서 비록 혼자 살더라도 공동체나 사회적 네트워킹을 유지하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 딸이 직장을 처음 시작했는데, 공부와 풀타임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어 동료들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딸을 도와주어 업무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공동체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딸은 다시 의욕을 되찾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계속 나아갈 힘이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일하는 생명의 전화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전화를 지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가 가진 힘이다. 혼자서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나에게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란다. 기회가 된다면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고, 학부모 모임에도 참여하고, 이웃들과도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해보길 권한다. 그 안에서 공동체가 주는 위로와 힘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글 : 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Wed, 25 Feb 2026 12:26:09 +1000</dc:date>
</item>


<item>
<title>고난을 통한 보상</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8</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span style="color:#7f00ff;">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했기에 겸손을 배우고, 상처받았기에 공감할 줄 알게 되며, 절망했기에 희망의 소중함을 깨닫고, 혼자가 되었기에 진정한 자립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삶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게 얽혀 있고, 고통은 당신이 더 큰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찾아온 것일지 모릅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보상 Compensation」</span></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짧게 한국을 방문하며 필자가 속한 한국인형학회 학술대회에 대면 참석하게 되었다. 최광현 교수님의 강의에서 이 시가 소개되었고, 마음으로 깊이 읽으며 참 좋은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어려움과 아픔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안에 ‘보상’과 같은 선물이 담겨 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공평하신 하나님이 남에게 없는 것을 나에게 주셨다”고 고백하던 송명희 시인의 노래가 자연스레 생각났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 본다이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총기 사건이 있었고, 그 자리에 한 한국인 가정이 있어 큰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누군가는 “왜 유대인 행사에 갔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가족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온 가족이 보호받았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고통 속에서 가족을 잃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쁘게 보면 끝없이 나쁜 경험일 수 있지만, 그 뒤에 찾아온 ‘보상’은 분명 존재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에 살다 보면 신분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다른 한국인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집세와 아이들 학비로 대부분의 수입이 나가고, 그래서 어린 자녀들이 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사회생활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지원으로 일할 필요가 없지만, 어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돈을 벌고 재정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이 또한 어려움 속에서 얻는 보상이다. 편안하게 자란 아이보다 더 일찍 사회를 경험하고 책임감을 배우는 것,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큰 ‘보상’이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아들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들은 이별의 아픔으로 깊은 수렁에 빠진 듯했고, 정서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전달받는 나 역시 마음이 아프고 흔들렸다. 그런데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비록 헤어졌지만, 나는 그 관계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아마 헤어지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부족했던 점, 그리고 관계 속에서 받은 축복과 유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들은 아픔 속에서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고, 그것이 이별이 남긴 ‘보상’이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남편과 나는 호주에서 ‘호주카리스대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정부 방침의 변화로, 때로는 환경적 요인으로, 또 때로는 관계의 어려움으로 크고 작은 위기를 겪어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위기 때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보상이 있었다. 일하던 학교의 어려움은 새로운 학교 설립의 기회가 되었고,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 수업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파트너 학교와의 관계가 종료되면서는 선교 사역이 열렸고, 힘든 시기에는 좋은 크리스천 변호사를 만나 귀한 조언을 얻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을 경험하며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쉽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배우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깊어졌다. 돌아보면 어려움의 순간은 분명 힘들었지만, 보상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감히 말하고 싶다. 인생은 보상이 함께하는 여정이기에,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되 그것이 끝이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인생의 단맛도 쓴맛도 모두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여기며, 그 안에서 감사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실패와 상처, 절망과 외로움은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근본적 이슈지만, 그 안에는 보상을 통한 성장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음을 기억하자.</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아버지의 기일을 맞았다. 세 번째 기일을 맞은 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바짝 말라 있던 어머니, 혼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실지 걱정되던 어머니,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던 어머니는 삼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보상을 경험하고 계셨다. 이제는 재정도 혼자 관리하시고, 혼자 씩씩하게 잘 다니시며, 영적으로도 많이 성장하셨다. 감사하게도 예전처럼 볼에 살이 차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삶에도 어김없이 보상이 있었고, 그것은 ‘성숙’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났다. 그 보상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함께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불안정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아픔과 불안정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안에 ‘보상’과 ‘변화’가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글 : 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ue, 17 Feb 2026 15:07:16 +1000</dc:date>
</item>


<item>
<title>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Korean Lifeline)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7</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는 위기에 처한 한인들에게 위기 상담과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호주 사회 안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 기관은 정부 지원 없이 이사들의 후원과 상담자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어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재정적 제약은 운영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상담 전화는 한 개의 전화 계정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 상담이 길어질 경우 다른 위기 상황의 전화가 연결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 전화는 위기 상담의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하소연이나 넉두리로 이어져 상담자들을 지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들은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며, 진정한 위기의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생명의 전화의 도움을 통해 위기를 넘기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은 많은 이들이 존재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생명의 전화는 호주시드니 한인회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상호 협력을 통해 정신 건강 교육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2026년에는 젊은 세대의 정신 건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인회 회장님의 뜻에 따라,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 건강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기 개입을 넘어 예방과 교육으로 역할을 확장하는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생명의 전화 상담사들은 모두 무급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상담자들의 휴식을 위해 필자가 약 2주간 상담 전화를 전담해 받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 기간 동안 비교적 심각한 사례들을 연이어 상담하며 상담사들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깊이 체감하게 되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 본다이 비치 인근에서 발생한 유대인 대상 총기 사건에 한국인 가정이 연루되어 큰 고통을 겪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가정이 생명의 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한인회와 생명의 전화가 함께 연대하여 작은 위로와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지역 사회의 연결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사람은 누구나 삶의 여정 속에서 예기치 않은 위기를 경험합니다. 어떤 위기는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지나가지만, 어떤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아 오랜 시간 마음의 고통을 지속시키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감정, 생각, 이미지가 치료 없이 방치될 경우 그 상처는 개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생명의 전화와 같은 위기 상담 및 정신 건강 지원 기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때로는 마음의 상처에 임시적인 ‘반창고’를 붙여 주고, 때로는 마음과 몸이 쉴 수 있는 안전한 자원을 안내하며, 궁극적으로는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상담한 한 내담자는 가정 폭력의 경험으로 인해 극심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트라우마 상담을 통해 그 경험이 더 이상 현재의 삶을 위협하는 공포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밤중, 잠결에 울리는 전화벨과 함께 “죽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화 한 통으로 누군가가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에,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는 오늘도 쉬지 않고 교민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생명의 전화는 정신 건강 위기, 가정 폭력 위기, 자살 위기 등 긴급한 순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때로는 호주 경찰이 위기에 처한 한인에게 생명의 전화 번호를 안내하기도 하고, 한인 심리학자나 정신 건강 치료사들이 휴가 기간 동안 자신의 내담자들에게 안내하는 안전망이 되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 소중한 기관이 앞으로도 위기를 잘 넘기고 교민들의 마음에 평안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 약 30명의 상담사가 함께하고 있는 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가 교민 사회 안에서 오래도록 지속되며 더욱 단단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기관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며, 여력이 되는 분들의 후원은 생명의 전화가 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힘이 됩니다. 필요하다면 다양한 현장에서 정신 건강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도 이어갈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 한인 생명의 전화는 주 7일, 24시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화번호 (02) 9858 5900. 번호를 기억하시거나, 이름만이라도 정확히 기억해 두셨다가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꼭 안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의 크고 작은 위기들을 잘 극복하시고, 마음이 강하고 행복한 교민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글 : 호주한인생명의전화 원장 서미진</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Mon, 02 Feb 2026 16:11:19 +1000</dc:date>
</item>


<item>
<title>아버지를 넘어서는 아들</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6</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 본다이 비치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누카(수전절)를 기념하던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인을 혐오하던 부자가 총기를 난사해 16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다쳤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10살 소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랍비, 그리고 사건을 진압하던 경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점은 한 가족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정서가 구분되지 못하고 뒤섞이는 일은 가족 안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로는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TV 상담 프로그램에 한 할머니가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싱글맘인 딸을 돕기 위해 힘든 상황에서도 손주를 돌보고 공부를 챙기며 집안일까지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손주는 그런 할머니에게 심심하면 폭력을 행사했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이 진행되면서 드러난 사실은, 할머니와 딸의 관계가 매우 냉랭했고, 그 사이에서 아이가 큰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던 아이는 엄마 안에 해결되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대신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했고,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정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언젠가 한 교수님이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통제와 요구를 많이 하게 되는데, 자녀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부모를 넘어서는 독립적인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민 사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 2세들이 많지만, 그중에는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 부모의 요구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부모의 기대에 끌려다니는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시켜서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전문직에 종사하더라도 결혼 상대자로서 매력이 없다는 젊은이의 말이 공감되기도 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부모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경우, 자녀는 오히려 더 큰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만큼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느끼며 좌절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양쪽 부모 모두 일류 대학 출신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가족 전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 자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이해와 자기 확신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되면,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았든 상관없이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훌륭한 선수 뒤에는 피땀 흘려 키워낸 코치나 부모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는 좋은 코치와 부모의 지도를 잘 따르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은 코치와 부모를 넘어 자신의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합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떠나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자신의 소유처럼 여기며 계속해서 코칭하려 합니다. 심지어 자녀가 결혼해 독립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번 총기 사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정서를 공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생명을 해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은 정서적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가족치료의 아버지 머레이 보웬은 ‘자아 분화(Self-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건강한 개인은 가족을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하되, 가족의 불건강한 정서 체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표와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 성인이 된 아들이 집에 왔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밤 가족과 함께 지내고 나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그만큼 가족 시스템의 영향력은 강력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므로 자녀가 가정에서 분화되는 과정은 성장에 꼭 필요합니다. 새끼 새가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다가 점점 스스로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듯, 자녀도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불행이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고, 자녀는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아들이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분리된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29 Jan 2026 12:23:21 +1000</dc:date>
</item>


<item>
<title>스트레스 검사와 자기돌봄</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5</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 검사를 하다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과 업무를 무리 없이 감당하며 살아간다. 반면 같은 수준의 점수를 받고도 이미 탈진 상태에 가까워 심각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에는 개인차가 분명 존재하지만, 공통적으로 스트레스 점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반대로 스트레스 점수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다. 스트레스가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타고난 기질이나 인지적 특성상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안전하고 변화가 적은 환경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검사를 받은 한 사람은 점수가 매우 낮았는데, 10년 이상 동일한 직종에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해 왔고 가정환경 또한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현재의 삶이 안정적이라는 긍정적 신호일 수 있지만, 동시에 도전과 변화, 성장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을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필자 역시 스트레스를 비교적 잘 받는 편이다. 과거에는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쉽게 상처를 받거나 감정적으로 오래 끙끙 앓는 일이 잦았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한 어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수치심으로 남았던 기억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예민한 사람에게는 작은 언어적 자극도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성경에서도 타인을 비하하는 말의 위험성을 경고하듯, 언어는 사람의 마음과 정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시간이 흐르며 타인과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감정 조절 능력도 어느 정도 향상되었지만, 예민함은 여전히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 예민함은 약점이 아니라 기질의 한 특성이다. 문제는 예민한 사람이 스스로를 비난하며 “왜 나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잘 받을까”라고 자책하는 데 있다. 오히려 “나는 상황과 감정에 더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민함은 공감 능력, 관찰력,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동반한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이해한 뒤, 스트레스 노출 시간을 조절하거나 변화가 지나치게 많은 환경을 피하는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점진적으로 키워가는 것이다. 업무나 과제를 작은 단위에서 시작해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스트레스 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만 스트레스를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도전하며 스스로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가는 태도가 필요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편, 스스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가 만난 한 사람은 매우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유형이었다. 본인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콜레스테롤 상승과 갑상선 기능 저하 등 신체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었다. 다행히 문제를 인식하자마자 적극적으로 관리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수치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긍정적 태도가 스트레스 인식을 낮출 수는 있지만, 신체가 보내는 경고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 반응은 감정과 생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영적·정서적·신체적 존재로서 스트레스의 영향을 전인적으로 받는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는 마음가짐이나 신념뿐 아니라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같은 기본적인 신체 돌봄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좋아서 선택한 일조차 오래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신체적·정신적 건강 모두를 해칠 수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직장을 떠나거나 건강을 잃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다. 나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인지, 비교적 둔감한 사람인지, 혹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이미 소진되고 있는 사람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스트레스는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삶의 일부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처럼 이를 방치하면 결국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꾸준한 자기돌봄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면,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오늘 하루, 나의 스트레스 신호에 귀 기울이며 나를 돌보는 작은 실천이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22 Jan 2026 16:53:08 +1000</dc:date>
</item>


<item>
<title>사랑과 존경</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4</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하는 ‘존중’을 아내로부터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칭찬을 통해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더 좋은 남편을 만들기 위해 칭찬 보다는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려고 합니다. 한 가정사역자가 말했습니다. “여자는 내 남자를 최고의 남자로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 즉 많은 아내들은 남편이 최고가 되기까지는 만족하기가 어렵기에 남편의 잘 하는 것 10가지 보다는 못하는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남편이 이것만 더 잘하면 좋을텐데……’ 그것의 결과로 남편들은 아내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에 더 갈급해 집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반면, 아내들은 남편의 섬세한 배려와 관심을 바랍니다. 성적이지 않은 사랑 표현을 더 많이 원합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잠을 자고 일어 났을 때 남편의 관심있는 말 한마디, “잘 잤어? 좋은 하루! 그리고 사랑해!” 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또는, 손을 잡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작은 행동을 좋아합니다. 그런 작은 행동과 언어의 표현을 통해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 원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느껴지는 그 사랑을 원하는 것입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많은 부부들이 남편과 아내가 가지고 있는 필요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으로 결혼 생활을 풍성하게 잘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부분에 아주 잘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33절까지 보면 남편과 아내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사용하시는 표현에있어서 아내들과 남편에게 하시는 말씀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표현을 남편과 아내에게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아내들에게는 ‘남편을 경외(존경)하라’ 혹은 ‘복종’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왜 다른 표현을 사용하였을까요? 언뜻 보기엔 불평등해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고 놀라운 비밀(32절)이 있습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에머슨 에서리치 박사가 쓴 '그 여자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그 남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이라는 책에서 남편은 아내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아내의 존경이 없게 되고, 아내의 남편을 향한 존경이 없으면 남편의 사랑 역시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서 채워지지 못함으로 생긴 애정 결핍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을 주지 못하게 함으로 그것이 지속될 때 ‘정신나간 주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고 나아가 이혼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는 피차 복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해야 합니다. 비록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25절) 것입니다. 그럴 때 아내의 남편에 대한 존경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올바로 깨달은 이후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24절) 교회의 머리로서 존경(23절)해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회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런데 많은 아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내가 어떻게 존중해 줄 수 있지?”, “사랑이 충분히 느껴져야 남편의 뜻에 복종할 수 있지”. 남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존경을 표할 때 나는 아내를 사랑할 수 있어”, “나를 무시하는 아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남편은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아내까지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아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까지도 존경경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에머슨 에거리치 박사는 이러한 회복의 노력이 둘 중 ‘성숙한 사람’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배우자는 변화가 없는데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죠? 억울해요.’ 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람만이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진리이며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바로 ‘나’로부터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랑받는 아내, 존경받는 남편이 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가족과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Wed, 14 Jan 2026 07:11:54 +1000</dc:date>
</item>


<item>
<title>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외상의 치유</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3</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한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바람을 피우지 않을 사람이라는 확신과 신뢰를 주는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자신 몰래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경험했다. 이후 남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우울과 불안감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괜찮다가도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지고 힘들어지는 등, 오랜 시간 심리적 갈등과 감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배우자의 외도는 일반적으로 이혼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이혼보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유지한다고 해서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아이들이 아직 어리거나,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뢰가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관계를 지속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배신이나 외상을 경험한 경우, 그 상처는 매우 깊어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 때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증상을 겪기도 하며, 죽음과 같은 큰 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비애의 증상이 이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과 죽어가는 것』이라는 책에서 상실을 경험할 때 나타나는 감정의 단계를 ‘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설명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외상의 치유』의 저자 데니스 오트만(Dennis Ortman)은 외상 증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한 노출, 강한 두려움과 무기력감, 사건의 재경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 회피, 정서적 무감각, 높은 불안, 과민함과 격분 등. 이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전쟁 후에 겪는 증상과 유사하다. 이러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상처가 깊어 회복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며, 의존적인 성향이나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더 힘들어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렇다면 이러한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오트만은 자신의 책에서 회복을 위한 여섯 단계를 제시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1단계: 감정의 폭풍을 진정시키기</b></p>
<p style="text-align:justify;">친밀한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극심한 분노와 억울함, 배신감이 몰아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배우자가 상대와 함께한 시간을 상상하거나 질문하게 되는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이를 억누르기보다는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감정을 배우자에게 파괴적으로 쏟아내면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성급한 용서나 이혼 결정을 피하고, 안전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가족, 친구, 멘토 또는 상담사에게 도움을 받아 위로와 공감을 얻는 것이 좋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2단계: 관계에 이상이 생긴 원인 이해하기</b></p>
<p style="text-align:justify;">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외도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나 상황, 배우자의 심리적 기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다르다. 상간자와의 관계를 파헤치기보다, 이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 배우자의 취약한 부분과 정서적 필요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건강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3단계: 자신과 관계의 상호작용 이해하기</b></p>
<p style="text-align:justify;">자신과 파트너의 상호작용,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 등을 되돌아보며, 내가 했던 것과 하지 못했던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단계다. 이를 통해 관계의 개선점을 찾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4단계: 관계에 대한 현명한 결정 내리기</b></p>
<p style="text-align:justify;">신뢰가 무너진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끝낼 것인지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앞선 단계들을 충분히 거친 후에 내리는 결정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5단계: 분노를 해소하고 자존감 회복하기</b></p>
<p style="text-align:justify;">배우자의 잘못으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되었을 수 있다. 자신을 탓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에서 벗어나,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를 회복해야 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b>6단계: 파트너를 용서하기</b></p>
<p style="text-align:justify;">이 단계는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며, 배우자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든, 이혼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용서는 자신을 위한 선택이며, 마음속에 쓴 뿌리를 남기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한 정서적 건강의 기초가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 여섯 단계는 외상 회복의 여정이며,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 있다. 전문 상담사와 함께하는 과정은 더 온전하고 수월한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외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Fri, 19 Dec 2025 10:02:55 +1000</dc:date>
</item>


<item>
<title>함께하며 배우는 것들</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2</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그 집단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동시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대학원 공부를 하던 중 병원에서 잠시 실습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잠시 머무는 입장이었기에 조금은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었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배울 점이 많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한 사람은 필자의 수퍼바이저였다. 그는 모든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었는데, 지나치게 열정적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간섭도 많이 했다.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려주려 하고, 처리되지 않은 업무가 있으면 강하게 요구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마치 부모처럼 동료들을 돌보려는 모습도 있었다. 위기 상황을 잘 헤쳐 나가는 강점이 있었지만, 융통성이 부족하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에게서 배운 점은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지 않고 즉시 직면해 해결하는 용기였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자신처럼 완벽함을 기대하는 태도는 주변을 힘들게 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융통성과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또 다른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우울해 보였다. 복도를 걸을 때 팔과 발이 함께 움직여 마치 우울증 환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대화를 나누면 늘 웃음과 유머가 넘쳤다. 알고 보니 그는 이혼 후 자녀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고양이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 속에서 직업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유머를 활용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걸음걸이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과제를 보여주는 듯했다. 필자가 트라우마 상담을 한다고 하자 큰 관심을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또 다른 사람은 키가 크고 멋쟁이로 유명했다. 매일 반듯하게 다려입은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주말마다 가족의 옷까지 직접 다림질한다고 했다. 옷과 신발에 관심이 많아 필자의 신발에도 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했다. 자신의 일은 잘하지만 타인의 부탁은 회피했고,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꼭 표현했다. 개인주의적 스타일이지만, 사회생활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지켜내는 매력이 있었다. 다만 성장해야 할 부분은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하는 태도였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또 다른 사람은 네팔에서 온 싱글맘이었다. 그는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잘 알고 실천했다. 일할 때는 열심히 하면서도 중간중간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75세 된 행정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곧바로 커피를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알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과 중요함을 놓치지 않았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엄마, 아빠’라는 타투를 새긴 것도 그 예였다. 그는 타인을 돌보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균형을 보여주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다양한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에어컨 온도를 19도로 맞추고, 또 다른 사람은 25도를 좋아한다.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며, 조금씩 양보하고 함께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가정, 직장, 교회, 사회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배우는 삶을 선택해 보자.</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
<p style="text-align:justify;"> </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ue, 09 Dec 2025 11:10:54 +1000</dc:date>
</item>


<item>
<title>트라우마 치료의 효과</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1</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하고 씩씩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최근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인터뷰를 본 뒤 합격 여부를 알 수 없어 불안해하며 이틀 동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를 살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무서운 아버지가 있었고, 그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너무 무서워 테이블 밑에 숨어 있곤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인이 되었지만, 그 시절 아버지로부터 경험한 트라우마가 심리적으로 깊은 두려움을 남겼고, 작은 염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 젊은이에 대해 트라우마 치료를 요청한 보호자가 있어, 직접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어머니와 함께 왔고,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선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하고 트라우마 치료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명을 들으며 청년과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고, 치료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이 치료가 효과가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청년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여러 번 따돌림을 당했고, 그로 인한 상처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직장에서 일할 때는 업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고 결국 쫓겨난 경험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래서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고, 먼저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작업부터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를 바로 떠올릴 경우 감정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자신이 혼자 행복하게 있는 장면을 떠올렸고, 그 순간 내면의 행복감이 올라오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왜 울었는지 묻자, “너무 행복해서 울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동안 마음속에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 반응을 보며 청년을 많이 격려해 주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비록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좋은 엄마와 가족이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치료에서 ‘좋은 지원자’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 청년과 총 4회에 걸쳐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두 번째는 학창 시절의 따돌림 경험을, 세 번째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네 번째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다루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상담을 하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치료에서는 특히 극적인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청년은 처음 트라우마를 다룰 때는 “나는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직후에는 “나는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치료에서는 “나는 강하다”, 세 번째 치료에서는 “나는 좋은 친구다”라고 말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표정은 환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통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안한 생각이 사라졌고, 가슴의 답답함도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치료 후 청년에게 물었더니, 새로 시작될 일에 대한 기대만 있을 뿐 불안감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주 후,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우리의 뇌 속에 갇혀 있는 기억이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오늘을 살아가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반대로 그 기억을 잘 치료하면, 과거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고 현실에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비슷한 불안을 경험한 또 다른 여성분을 치료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치료를 받으며 “나는 과거와 미래에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왔던 것이죠. 그러나 치료를 통해 자아의 힘이 강해졌고, 자신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트라우마는 예기치 않고 원치 않는 경험이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방치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잃지 않도록 말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요즘은 심리 치료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회복의 길도 다양하게 열려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두 사례처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행복한 오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병은 알려야 한다는 말처럼, 심리적 아픔이나 트라우마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고, 주변의 지지자를 찾아 함께 해결해 나간다면 앞으로의 삶은 훨씬 더 가볍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Thu, 04 Dec 2025 08:26:31 +1000</dc:date>
</item>


<item>
<title>누구나 격려가 필요합니다</title>
<link>https://qldkoreanlife.com.au/bbs/board.php?bo_table=partner_acc&amp;amp;wr_id=110</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justify;">수치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 다른 사람과 다르게 문제가 있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당신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필자는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나 역시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나눌 때가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내담자는 “아, 상담자도 이런 문제를 겪을 수 있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도 정상이고 좋아질 수 있겠네!”라고 느끼며 큰 위로를 받습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하신 것처럼,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 지지와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루의 1/3을 물건 찾는 데 허비한다』라는 책을 쓴 저자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 정리 습관을 갖도록 돕는 일입니다.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전통적인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각 개인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는 정리를 잘 하지 못했고, 결국 정기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정리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즉, 물건을 잘 정리하는 습관조차도 누군가의 지속적인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다가 다치면 엄마나 아빠에게 달려와 크게 울곤 합니다. 그때 부모가 “많이 아팠겠다, 그래서 속상했구나”라고 위로하며 꼭 안아주고, 필요하다면 반창고를 붙여주거나 ‘후’ 하고 불어주면 아이는 금세 다시 놀러 나갑니다. 부모의 위로와 공감 한마디가 아이에게 세상을 다시 만만하게 바라볼 힘을 주는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배우자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아내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스킨십뿐 아니라 인정과 칭찬, 지지입니다. 아내의 칭찬 한마디에 남편의 어깨가 펴지고, 잔소리 한마디에 어깨가 축 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은 가정을 위해 하루 종일 헌신하지만, 감사보다는 부족한 점에 대한 불평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남편이 </p>
<p style="text-align:justify;">가진 좋은 점을 기억하고 칭찬한다면, 남편은 세상을 다 얻은 듯 아내와 가정을 위해 더 노력하는 멋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는 아내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평안하여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결국, 아내는 사랑을 주는 남편이 필요하고, 남편은 존경을 해주는 아내가 필요합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배려를 필요로 합니다. 눈물 흘리며 외로울 때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 불안할 때 “잘 될 거야”라고 격려해주는 사람, 죽음을 앞둔 이에게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 아파 누워 있을 때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주는 사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듯, 내가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줄 때 세상은 나로 인해 더 살아갈 만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서로를 내 몸처럼 사랑하여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p>
<p style="text-align:justify;"><br /></p>
<p style="text-align:justify;">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p>]]></description>
<dc:creator>코리안라이프</dc:creator>
<dc:date>Sun, 30 Nov 2025 08:25:18 +1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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