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임신과 출산
작성자 정보
- 코리안라이프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19 조회
- 목록
본문
한밤중, 잠결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분이 부부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산후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듯했습니다. 낯선 호주 땅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깊이 공감했고, 몇 가지 팁과 정보를 드린 후 전화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화 이후, 수십 년 전 제가 아이를 낳고 키웠던 기억이 떠올라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호주 앵글리칸 교회에서 만난 한 한국인 사모님은, 호주 시골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을 당시 미역국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지인이 출산할 때마다 직접 미역국을 끓여 돌보았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미역국을 먹으며 감격해하던 성도의 모습을 떠올리며, 해외에서 자녀를 낳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여섯 아이를 낳으며 제대로 산후조리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전화 속 엄마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출산 후 산모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한 달간 충분히 쉬거나,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산모를 돌보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여성의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며, 충분한 쉼과 돌봄이 있어야 아이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없이 엄마와 아빠만 있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쉼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만족스러운 돌봄을 받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는 종종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모님이 성도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돌보았던 일은 단순한 음식 제공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와 가족의 사랑을 담은 깊은 위로였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남편들이 출산 후 산모를 잘 돌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들이 군대 시절의 힘든 경험을 이야기하듯, 여성들도 임신과 출산의 서러움을 종종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정서적 지지와 위로가 절실한 시기이며, 부족할 경우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고, 부부 관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첫 자녀를 맞이한 부모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습니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는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하는 날들이 반복되며, 이유 없는 울음에 지치기도 합니다. 공동체가 있는 곳에서는 육아에 대한 조언을 얻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호주에서 핵가족으로 지내는 경우에는 이런 지원조차 없어 부모가 점점 지쳐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아로 지치다 보면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게 되고, 이는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럴 때 “나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배우자도 나만큼 힘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격려를 먼저 건네고, 비판보다는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어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공감의 말로 위로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 역시 혼자서 일하고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는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표현하고, 필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시기에 모든 기대를 남편에게만 하기보다, 병원, 교회, 지역 공동체 등 사회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한 지혜로운 자매님은 노산으로 자녀를 낳은 후, 가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에 대해 묻곤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양육에 대한 지혜도 함께 나눕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도움을 받는 것도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한인 공동체 내에서 이미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분들이 젊은 엄마들에게 관심을 갖고 조금씩 도와준다면, 타국에서의 임신과 출산이 아픈 기억이 아닌, 따뜻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호주카리스대학 서미진
관련자료
-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