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넘어서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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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다이 비치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누카(수전절)를 기념하던 유대인들을 향해 유대인을 혐오하던 부자가 총기를 난사해 16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다쳤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10살 소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랍비, 그리고 사건을 진압하던 경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점은 한 가족인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의 정서가 구분되지 못하고 뒤섞이는 일은 가족 안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로는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TV 상담 프로그램에 한 할머니가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싱글맘인 딸을 돕기 위해 힘든 상황에서도 손주를 돌보고 공부를 챙기며 집안일까지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손주는 그런 할머니에게 심심하면 폭력을 행사했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이 진행되면서 드러난 사실은, 할머니와 딸의 관계가 매우 냉랭했고, 그 사이에서 아이가 큰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던 아이는 엄마 안에 해결되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대신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했고,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정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한 교수님이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통제와 요구를 많이 하게 되는데, 자녀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부모를 넘어서는 독립적인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이민 사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 2세들이 많지만, 그중에는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 부모의 요구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부모의 기대에 끌려다니는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시켜서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전문직에 종사하더라도 결혼 상대자로서 매력이 없다는 젊은이의 말이 공감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경우, 자녀는 오히려 더 큰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만큼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느끼며 좌절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양쪽 부모 모두 일류 대학 출신이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가족 전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 자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부모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이해와 자기 확신을 통해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되면,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았든 상관없이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훌륭한 선수 뒤에는 피땀 흘려 키워낸 코치나 부모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는 좋은 코치와 부모의 지도를 잘 따르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은 코치와 부모를 넘어 자신의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합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떠나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는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자신의 소유처럼 여기며 계속해서 코칭하려 합니다. 심지어 자녀가 결혼해 독립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총기 사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정서를 공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생명을 해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은 정서적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가족치료의 아버지 머레이 보웬은 ‘자아 분화(Self-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건강한 개인은 가족을 사랑하고 관계를 유지하되, 가족의 불건강한 정서 체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표와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 성인이 된 아들이 집에 왔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밤 가족과 함께 지내고 나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그만큼 가족 시스템의 영향력은 강력합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가정에서 분화되는 과정은 성장에 꼭 필요합니다. 새끼 새가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다가 점점 스스로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듯, 자녀도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불행이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고, 자녀는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아들이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분리된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었다면, 이번과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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