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이겨내는 효과적인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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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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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태우고 파란불이었지만 왼쪽으로 가는 화살표 등이 켜지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자동차 하나가 빵빵거린다. 약간 자리를 만들어주자 옆으로 와서는 택시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파란불인데 왜 가지 않았느냐고 나무란다. 왼쪽으로 가는 신호등이 켜지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다고 나도 반응을 했다. 비록 빵빵거리며 화를 내는 낯선 사람을 만났지만 나도 나의 의견을 표현한 경우, 사건 발생 후 그 다지 마음이 힘들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 운전자가 아주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지나가 버릴 때는 달랐다. 날벼락 맞은 기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충격에 멍하게 서 있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당했고, 무방비 상태에서 대처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대처한 경우 보다 훨씬 더 충격이 오래 갔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오는 폭력이나 가해 또는 큰 외상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몸을 움직이고 반응을 하면 훨씬 더 어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데 효과적이다. 끔찍한 경험을 한 후, 그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 여부가 그 일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상처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베셀 반 데어 콜크도 그의 책 ‘몸은 기억한다’에서 말한다. 그것의 한 예로, 미국의 허리케인 키트리나가 몰아닥친 후, 홍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좁은 곳에 실려 옮겨져 단체로 집을 떠나 멀리 대피한 곳에 있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의 몸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진 상태에서 해소가 되지 않아서, 전체의 30%가 극심한 공포와 우울감 그리고 분노를 느끼게 되었고, 신체의 질병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서 911 테러 사건에서는 테러가 일어난 직후,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뇌와 신체는 다시 안전을 확보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진정될 수 있게 되어 8%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효과적인 행동은 위험을 종결시키는 반면, 충격에 무기력감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되면 신체는 스트레스 상태를 해소하지 못하고 회복도 잘 하지 못하게 되어 오랫동안 힘들어질 수 있다. 옛 말에 슬픔은 나누어야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어야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외상을 경험한 직후에는 그것을 혼자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털어 놓아서 위로를 받고 감정을 해소해서, 몸이 느끼고 있는 위기 상태를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프랑스 심리학자 피에르 자네는 트라우마 스트레스를 1889년에 그의 논문에서 발표하였는데, 그 이후에 트라우마 생존자들은 “지속적으로 행동을 취하거나 사건 당시 시작한 행동을 계속하려는 시도를 이어간다”고 하는 그의 견해가 수용되고 있다고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은 재경험되는 위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을 위기에서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리는 작업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무기력감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게 한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부터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이의 경우, 자신에 대해서 무기력하게 여기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성학대를 경험한 아이들도 무기력함 가운데 자신이 성학대를 경험하는 상황을 허용한 것 또는 그 장소에 간 것이 잘못이라 여기며 자신을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외상을 설명하는 책에서는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는 설명을 한다. 자신을 비난해서라도 자신이 경험한 문제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며 문제를 이해하고 싶은 시도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학대로부터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는 할 수 있으나, 자신을 비난함으로 현실에서의 또 다른 무기력에 들어가게 한다. 자신을 비난함으로 관계에서 늘 실패하고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이렇게 장기간 무기력함을 경험하는 것을 마틴 셀리그만 박사님은 학습된 무기력감이라고 표현을 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아무런 통제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의 느낌과 행동을 설명하는 데, 그것이 비관적인 태도의 기반이라고 하였다. 비관주의는 개인화, 일반화, 영속성 세 가지를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모든 일을 망친다. 나는 늘 이 모양일 거다.’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안전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하며, 일상에서 작은 외상들의 자극들이 이어질 때, 작은 행동이라도 취하고 반응을 하도록 도와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위의 사람들로 인해서 자극을 많이 받고 힘든 분이 있을 때, 그 분에게 수동적으로 참고 얼어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은 그 분의 과거 트라우마까지 해소하는데 긍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 그것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압도된 감정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치유라든가 연극을 한다든가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평소의 무기력과 무기력한 대처 반응과 다른 삶의 반응들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한 분이 대인 관계에서 무기력하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험을 했기에 엄청 칭찬을 해드렸다. 과거에는 무기력함으로 반응하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 분은 자신이 많이 성장했고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객관화 시켜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을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으로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몸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 듣고만 있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은 작은 것이나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그러므로 무엇부터 해야 무기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은, 먼저 신체를 움직여 보고 가만있지 말고 꿈틀거리며 아직도 살아가며 호흡하는 내 자신의 깊은 곳의 움직임을 느껴보고 움츠린 나를 자유롭게 하는,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호주기독교대학 서미진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