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래디 섬에서 찾는 나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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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ng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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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산책로에서 바라본 해안 전경
브리즈번 동쪽 해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섬으로는 모튼 섬(Moreton Island)과 스트래디 섬(Stradbroke Island)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 유튜버가 소개하는 모튼 섬을 본 기억이 있다. 관광객을 위한 물놀이가 많고 심지어는 유람선이 찾아 올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래드 섬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다.
골드 코스트에 정착한 지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어간다. 이곳저곳 나름대로 여행하며 지낸다. 하지만 아직 섬에는 가보지 못했다. 어느 섬을 먼저 가볼까. 잠시 생각한 후 스트래드 섬을 택했다. 집에서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관광객을 위한 놀이 시설이 많은 장소는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떠들썩한 즐거움보다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온몸으로 알 수 있는 따뜻한 날씨다. 파란 하늘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서 멀지 않은 선착장에 도착했다. 평일이지만 넓은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차장을 둘러보는데 빈자리 하나가 보인다. 엄청난 행운이다. 행운과 불행은 우리 가까운 곳에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착장에는 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있다. 자동차를 배에 싣고 섬에 들어가는 행렬이다.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찾는 섬이다. 일단 배표를 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카페가 보인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배표를 파는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두 명의 직원이 전화 응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시 기다려 배표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비싼 22불이다.
배가 떠나려면 시간이 있다. 승차장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선박 시간표와 요금 안내판이 보인다. 배표 가격이 다양하다. 나같이 노인 연금을 받는 사람과 학생에게는 반값이다. 거기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더 저렴하다.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두 배 이상의 금액을 주고 배표를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은 잊는 것이 상책이다. 생각할수록 나만 손해다.
배에 올랐다. 쾌속선이다. 갑판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즐긴다. 바다 색깔이 예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반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선한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속력을 늦춘다. 그리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고래가 있다는 것이다.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에게 눈길을 돌린다. 고래가 물을 뿜으며 수영을 즐기고 있다. 배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고래 주위를 맴돈다. 승객을 배려해 준 선장이 고맙다. 비싼 금액을 주고 표를 구매했다는 서운함이 눈 녹듯이 가셔진다.
사진 설명: 승객들이 고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배가 도착한 동네는 던위치(Dunwich)라는 지역이다. 배에서 내리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목적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포인트 룩아웃(Point Lookout) 지역이다. 첫 번째 버스는 배에서 내린 손님으로 만원이다. 곧이어 도착한 버스에 오른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작고 아담한 공동묘지를 지나친다. 서양 사람들은 공동묘지를 혐오 시설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버스는 2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산책로를 찾아가 본다. 산책로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변을 따라 나무판으로 만든 산책로가 계속 이어진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놀랍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해변을 덮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에는 물보라가 일고 있다. 사진을 계속 찍으며 걸을 수밖에 없는 산책로다.
걷다보니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내려가 본다.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로 파도 소리가 굉음을 내고 있다. 태평양의 높은 파도가 좁은 바위 골짜기에 부딪히며 내는 굉음이다. 근처에는 해풍이 바위를 깎아 만든 조각품들도 즐비하다. 이러한 바위들 틈에서 한 송이의 작은 꽃을 피우고 있는 잡초가 시선을 끈다.
산책로는 산 중턱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자연에 심취해 걷는데 대사관(Quandamooka Truth Embassy)이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고래 전시관(Whale Interpretive Centre)을 만들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원주민의 대사관이라고 한다.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를 훼손할 수 없다며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현대인의 눈으로는 원주민들의 저항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까지는 걷는 것에 자신있다. 사진을 계속 찍으며 산책로를 계속 걷는다. 수영객으로 붐비는 백사장이 보인다. 백사장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영장에서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자연이 만든 수영장이다. 백사장 끝자락까지 걸어가 바위에 올라가 본다. 방학을 맞아 바다를 찾은 학생들이 모여 있다. 서너 명은 낚시하고 또 다른 그룹은 서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학을 맞아 학교와 공부를 잊고 오롯이 현재의 삶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된다.
사진 설명: 백사장에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돌아갈 시간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린다. 건너편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큼지막한 낚싯대들이 석양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하루를 끝내고 멀어져 가는 태양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랜만에 바다 내음을 흠뻑 마시며 좋은 경치 속에서 지냈다. 경치를 빌린다는 ‘차경(借景)’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오늘 본 것은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섬의 극히 일부분이다. 다음에는 텐트를 가지고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며칠 지낼 생각을 해본다. 많이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불편함이 만든 비좁은 틈 사이로 나만을 위한 풍경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