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즐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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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시간이 허락할 때는 산을 찾아 몇 시간씩 걷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동네 주위를 걷고 있다.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생각은 산책하며 대부분 정리한다.
산책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다. 매일 같은 시각에 산책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는 칸트를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칸트의 저서 대부분은 산책하며 떠오른 생각을 발전시켜 집필했다고 한다. 산책은 칸트에게 건강한 삶과 깊은 사색을 제공했음에 틀림없다.
오늘도 예외 없이 집을 나선다. 뜨거운 태양이 조금 식은 늦은 오후 시간이다. 집을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주택가를 주로 걷게 된다. 주택가 사이로 짧은 산책로가 있고 제법 큰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집을 나와 오른쪽으로 향하면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작은 호수에 갈 수 있다.
오늘은 집을 나와 왼쪽으로 걷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발걸음이 왼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즉흥적으로 하는 행동이 많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아도 깊은 생각 없이 중요한 결정을 많이 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도 있듯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해도 결과는 좋을 때가 많다. 좋게 표현하면 하늘의 뜻에 맡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예측하는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하기에.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낯익은 들풀과 인사를 나눈다. 손을 대면 잎사귀를 움츠리는 풀이다. 살아 있는 생물과 다름없다. 처음에는 쭈그리고 앉아 수없이 건드리곤 했다. 지금은 눈인사로 대신하며 가끔 손으로 쓰다듬는 사이가 되었다. 화분에 옮길까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내일 미루는 중이다. 만사가 그렇듯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미루게 된다.
산책로에 들어선다. 주택 단지 한복판에 있다고 믿기 어려운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산책로다. 아쉬운 점은 산책로가 너무 짧다. 산책로가 끝나면 새로 지은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인간의 편안함을 위해 울창한 숲을 거대한 주택단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숲에서 살고 있었을 수많은 생명체에게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이다. 필자도 숲을 파헤치고 건설한 주택에 살고 있으니,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에는 오솔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주택이 숲을 이루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동네 공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비구름이 오락가락하긴 했으나 파란 하늘이 보이기에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서쪽 멀리에는 태양이 비추고 있는데 비가 오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이런 날씨를 호랑이 장가가는 날 혹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래 내릴 비는 아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비가 오히려 더위를 식히며 마음마저 씻어주는 기분이다. 비에 적당하게 젖은 옷 감촉도 나쁘지 않다. 문득 이런 날씨라면 무지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생각했던 대로 반원을 그린 멋진 무지개가 하늘에 떠 있다. 도시에 살면서 자주 대하지 못했던 무지개다. 비에 옷을 적시며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는다.
산책하다 보면 걷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강아지와 함께 걷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눈다. 큼지막한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산책하는 젊은이와도 인사를 나누며 지나친다. 인도인 특유의 의상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눈웃음을 나눈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긴 해도 인도에서 이주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에는 집을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은 호수가 있는 산책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에 익은 주택가를 지나치며 호수로 향한다. 도로변에 있는 집을 지나치는데 유모차를 끌고 젊은 부부가 나온다. 산책하려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다. 유모차 안에서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 표정이 인상적이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같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옳고 그름에 집착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 근처 잔디밭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오리 떼를 비롯해 이름 모를 조류들로 붐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오리의 두 배는 됨직한 큰 몸통을 가진 못생긴 오리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에 이름을 물어보니 사향 오리라고 대답한다. 시선을 끄는 이유가 있다면 다른 조류와 달리 항상 혼자서 고독(?)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는 나의 삶과 비교되어서일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리 새끼들이 엄마를 따라 종종걸음을 내디딘다. 오늘 처음 본다. 귀여움에 더해 앙증맞은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다. 오늘부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다. 소일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호수를 지나 주택가를 걷는다. 집 앞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꽃과 조형물로 꾸민 집을 지나친다. 주인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정원이다. 호박 넝쿨이 담벼락을 타고 내려와 얼마 전까지 탐스러운 호박이 열려있던 집도 지나친다. 울타리 너머 망고를 비롯한 과일나무가 많은 집에도 시선을 보낸다. 산책하며 항상 지나치는 풍경이다.
내일도 산책에 나설 것이다. 특별한 것도 없는 흔히 이야기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꼭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가. 오리 새끼들의 귀여움을 바라보는 삶, 들풀과 인사를 나누는 삶,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새로움에 감격하며 지낼 수 있는 지금의 삶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