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포대기에 담긴 천국, 브리즈번에서 만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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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인간을 주제로 열린 작품 전시회장

 

호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며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 길을 나서는 편이다. 그중에서 호주 아웃백은 언제 가 보아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지평선 위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행하면서 눈에 띄면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장소가 있다. 식물원과 미술관이다. 식물원에서는 수많은 꽃과 나무 사이를 걸으며 자연과 하나 됨을 만끽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식물원은 포트 오거스타(Port Augusta)와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에서 마주친 황량한 들판에 조성된 식물원이다. 사막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키 작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꽃들은 아직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미술관도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림은 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그려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화가의 붓놀림을 통해 표현된 수많은 작품 속에 머무는 것을 무척 즐긴다. 많은 화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는 마음을 다독여준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지내야 하는 복잡한 생활에서 잠시나마 떠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오늘은 브리즈번에 있는 전시관(Petrie Terrace Gallery)을 찾았다. 우연히 알게 된 지인, 김혜란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브리즈번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조금은 걱정이 된다. 대도시가 그렇듯이 주차할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골목길에 주차할 자리가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가용이 없어지고, 자율주행 자동차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닐 것이라 한다. 그런 날이 오면 주차장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시관에 들어선다. 전시관은 비영리 자선 단체에서 지역 예술가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전시관은 한적하다.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작품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다. 팸플릿을 읽어 보았다.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인간 형상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역동적인 회화를 창조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권위 있는 아치볼드 초상화 상(Archibald Prize) 2025년 수상자가 심사를 맡았다고 하니 전시회의 전문성과 예술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개성 있는 여성이 붓을 들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나를 응시한다. 모녀가 공원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물 위에 모든 것을 맡긴 여인의 몽환적인 모습도 보인다. 호주 오지에서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도 시선을 끈다. 오래전 호주 사람들이 즐겨 타고 다녔던 홀덴(Holden) 자동차도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든 호주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화가로 짐작되는 작품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사진을 유화로 그려냈다. 자녀와 함께 찍은 전형적인 가족사진이다. 배경으로 벽에 걸려있는 부모님 사진도 눈길을 끈다. 조금 전에 보았던 호주 농촌을 표현한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나이든 동양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드디어 지인의 작품을 마주했다. 어릴 적 익숙하게 보았던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도 엄마 등에 업혔던 때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작품 앞에서 쉽게 떠나지 못한다. 아가는 꽃무늬가 들어 있는 포대기에 업혀 엄마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응시하고 있다. 아가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잔잔하게 마음을 적신다. 예수님께서 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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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우수작으로 선정된 김혜란 화가의 작품

 

지인의 작품과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김홍도가 그린 씨름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건장한 남자 두 명이 흡사 씨름하듯이 엉켜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럭비공이 들려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씨름 경기와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호주식 럭비(AFL:Australian Football League) 경기를 절묘하게 대비시킨 작품이다. 작은 전시관에서 한국 화가 작품이 두 점이나 전시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본다.


며칠 후 김혜란 화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품한 작품이 최고의 상은 아니지만 우수상(Highly Commended)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요즈음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있는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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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우수상을 받는 김혜란 화가

 

수상 소식을 들으니 수많은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화가의 정성과 많은 시간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떠오른다. 인간의 신체를 통한 화가의 영감을 주제로 열린 전시회이기에 다양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화가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붓끝의 움직임으로 인간의 내면을 보며 그들의 삶을 그려내는 솜씨에 감탄할 뿐이다. 대상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오늘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지나치며 하루를 보냈다. 그들 모두는 나름대로 삶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섬세한 붓끝으로 사람을 표현하는 화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나와 같은 삶의 무게를 가진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면… 

 

붓끝으로 세상을 보듬는 화가의 마음을 빌려,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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