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안에 방 한 칸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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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에 떨어지는 햇살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힘겨웠던 한 계절이 서서히 꼬리를 접고 있다. 어느새 가을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 같은 빗물이 수시로 내리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바삐 지나가는 세상에 마음을 아프게 하는 뉴스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8천 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귀한 생명이 비행기 사고, 전쟁 그리고 자연재해로 안타까운 떼죽음을 당했다. 몇 겁의 시간을 돌고 돌아서 이 세상에 태어났던 소중한 목숨이 사라지는 대형 참사가 계속 생겨난다. 예상치 못한 재난은 자연을 거슬린 인간들에 대한 신의 분노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싸이클론 알프레드가 휩쓸고 간 잔재물이 브리즈번의 흐려진 강물 위에서 떠내려가는 광경을 보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아들의 절친했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왔었다. 지난 1년 동안 세계 22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면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아들의 단짝이었던 닉키는 여행을 통해서 훨씬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여행한 나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는 인도와 네팔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접했던 동양 문화와 철학 사상에 많이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그쪽 세상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에 허덕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참으로 풍요로운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행운을 비는 영(Soul)이 스민 반지와 은팔찌를 샀다면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니키의 말이 나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앞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는 진지한 생각과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호주인 중산층 가정에서 부유한 생활을 했던 철부지 막내아들, 닉키는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와 유럽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가슴안에 담고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국에 있는 아들을 대신해서 너무나 기특하게 성숙해진 닉키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늘 그렇게 대했던 것처럼 “여기는 너의 두 번째 집이야, 친구가 이 집에 없어도 난 여전히 너의 가장 친한 친구 엄마이며, 너도 내 아들처럼 생각하니까 지나가다가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언제든지 들러라” 하고 한국 엄마의 따스한 마음을 전했다.
사람은 여행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의 친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의 성숙함은 외부의 자극과 스스로 깨우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통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함을 알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된 나의 삶을 위해서 행한다는 것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일는지도 모른다. 미움을 가졌으면 용서하는 마음과 화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또한 얻고 싶다. 어느 영화 속의 한 대사처럼 “용서란 가슴의 방 한 칸만 내주면 되는 것” 이라는데 가슴속의 그 방 한 칸을 내어주는 것이 참 힘든 세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똑같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되지만 매일의 날들이 더 밝고 아름답게 비추어지기를 바란다면 그 또한 나의 욕심일까...... .
글 : 황현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