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숙 칼럼리스트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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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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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초가을 아침, 부드러운 팝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한 잔의 따뜻한 카푸치노 커피 향이 온몸에 스며들며 작은 행복감으로 피어난다. 이 순간은 일상의 소중함과 평온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준다. 잠시 멈춰 서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삶의 활력을 더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소소한 순간들을 귀하게 여기며 매일의 일상에 따뜻한 기억을 쌓아가는 나날들이 되어주기를 소원해본다. 계절이 바뀌어도 붉게 타오르는 단풍나무는 볼 수 없지만 조금씩 옅어지는 초록의 나무 잎새에서 그나마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잊혀지는 일들과 잊고 싶은 일들을 삶의 한 부분처럼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일들은 기억 속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다 어느 날 문득 머리 한편을 스쳐 지나듯 되살아날 때가 있다. 바로 그런 한 단상이 잃어버린 우리의 시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간혹 오래된 고전 영화나 깊은 감동을 안겨준 작품을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호주에서 제작된 “토끼 울타리(Rabbit-Proof Fence)” 는 필립 노이스(Phillp Noyce)감독의 2002년 드라마 영화로서 사회적인 시선으로 호주의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토끼 울타리’는 상당히 감동적이며 인상 깊게 만든 사회성이 짙은 영화로 평가된다. 필자가 느낀 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호주 땅에서도 유럽에서 이주해온 구세대의 백인들이 잊고 싶은 부끄러운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들의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시사성과 고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호주 땅의 본 주인인 원주민의 슬픈 역사를 호주에 사는 대부분의 이민자, 특히 아시안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 깊이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흘러간 역사 속에서 외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백인들의 치명적인 부끄러움과 아직도 땅의 재산권의 문제 그리고 선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의 위신과 체면 때문이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물론 작금에 와서는 쏘리 데이(Sorry Day)도 제정되었으니 많은 발전과 개선이 있었다고 믿는다.


1930년대 초반, 수많은 애보리진들이 백인들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따라서 자녀들을 강제로 빼앗겼다. 그것은 절대로 원치 않는 강제 이별의 성격을 띤 것이며, 그 당시에 이미 많은 혼혈 아이들(half-Casters)이 있어서 백인 정부 측에서는 특히 그 아이들을 원주민 엄마들에게서 강제로 떼어내서 분리 교육을 하려고 했다. ‘토끼 울타리’도 서부 호주에서 1931년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해서 영화화한 것이다. 한때 호주 정부에서는 야생동물들이 농작물과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대체물로 토끼를 수입해서 넓은 들판에 방목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토끼들의 번식률이 너무 급작스럽게 늘다 보니 오히려 농작물의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각 농장에서는 토끼 방어 철망을 아주 넓은 지역에까지 확산시켜서 설치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토끼 울타리(Rabbit Proof Fence)” 였었다.


잠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해보면; 몰리와 데이지 그리고 레이시라는 십 대 원주민 소녀들은 강제로 부모들에게서 떼어진 채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교육기관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잡혀가기 이전에 주인공 소녀 몰리는 할머니한테서 자연을 보고 느끼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깨우쳤던 지혜를 터득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솔개를 보면서 방향을 짐작할 수 있고 정신을 집중시킴으로써 자연과 영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사촌들과 함께 농장에서 놀고 있던 몰리는 경찰에 의해서 강제로 차에 태워져서 1500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선교 교육기관으로 끌려가게 된다. 동물 수송용으로 보이는 기차를 타고 우리 같은 철창에 갇혀서 긴 시간을 여행하는데 음식과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도 못하는 처절한 상황에 놓인다.


기숙사에 강제로 끌려왔던 몰리와 두 소녀는 엄마를 몹시 그리워하다가 비가 오는 날을 택해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때부터 경찰과 그 뒤를 쫓는 추적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며, 정부의 책임자는 지도를 펼쳐놓고 소녀들의 탈출 노선을 추정하며 뒤쫓는다. 몰리는 몹시 영리한 소녀였다. 예전에 토끼 철망선에 관해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철망 선을 따라서 방향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정하게 된다. 몰리와 두 소녀는 무어 강을 따라서 엄마가 있는 지갈롱(Jigalong)으로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9주일 동안 겪으면서 마침내 집에 도착한다. 감명 깊었던 장면은 엄마와 할머니는 딸들이 그들 곁으로 돌아올 것을 굳게 믿으며 영적인 교감을 지속해서 보내는 것이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소녀들은 백인들의 추적을 피해서 서부 호주의 깊숙한 사막으로 숨어 들어가서 살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성장한 몰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나, 그 딸이 3살 되던 해에 백인들에게 빼앗기게 되며, 그 딸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을 또다시 겪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몰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딸에 대한 회한과 고통때문에 눈물을 삼키는데, 그 아픔에 공감하는 나의 눈에는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샘솟듯이 솟아나는 통증은 결코 치유 받을 수 없는 깊은 상흔으로 남게 되었으며, 빼앗긴 그들의 시간은 어떤 보상으로도 자식을 잃은 슬픔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경에서 보이는 호주의 드넓고 메마른 땅과 원주민의 영적인 울림소리는 소름이 끼칠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배역을 맡았던 원주민 소녀들은 실제 십 대의 나이로서 배우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웠을 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조상들이 겪었던 잃어버린 세대를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책임감을 느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커다란 검은 눈망울에 두려움과 도전이 뒤섞여 있었던 소녀의 얼굴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우리 자신도 이렇듯이 잊혀져 가는 역사 속에 묻혀서 지난 한 세대를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이러한 생각이 내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익숙하지만, 그 안의 그릇된 진실을 외면한 채 흘려 보낼 수는 없다. 감춰진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몫이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미래에 남겨야 할 가장 정직한 책임이 아닐까...... .


글 : 황현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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