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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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바다가 있고 그 바다가 얼마나 깊고 푸른지는 자신이 열심히 노를 저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지?’ 하는 한탄보다는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자아를 일깨워서 수면 밖으로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컴퓨터의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데 갑자기 화면이 정지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리프레쉬(Refresh)키를 누르고 잠시만 기다리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혼란스러운 요즘의 세태에서도 리프레시 키를 눌러서 호흡을 고르며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 듯싶다.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어제는 역사가 되고 내일은 신비로울 수 있으며 현재는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를 영어로 프레젠트(선물) 라는 단어를 쓰는데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매 순간순간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은 선물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지독한 공포로 기억에 남겨진 무색무취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몇 년간 뒤집어 놓았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모가 많았으며,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았다. 사람 사이의 만남이 생소해졌고 손끝이 닿지 않게 몸을 도사리는 어색하고 불안한 생활이 뒤따라 왔다. 그러나 우리라는 테두리 안의 가족들과 나를 염려해주는 지인들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며 위로를 받는 나날들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신선한 공기와 눈이 부신 햇살에 반사되는 연둣빛 잎사귀, 이슬방울 하나에도 애정을 가지는 따스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못된 역병은 아직도 세상을 떠돌아다니지만 내가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지금의 현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RU OK? 괜찮으세요?’ 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연대감을 가져야 할 변화의 시점에 서 있다. 나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도 건네진다면 가슴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이 바로 내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누니까 행복해지더라.’ 그 치유의 기쁨을 알면 내가 먼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음이다.
만약에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시작해서 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 속에서 일어나는 마술 같은 일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다는 꿈 정도는 꾸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동전의 양면같은 일은 일상에서 늘 일어나니까 실망할 필요도 없고, 다시 높이 던져서 뒤집으면 되니 실망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빠르게 타이핑 하다 보면 실수로 삶이라고 써지는 경우가 간혹 생긴다.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사람, 사랑, 삶 세 가지의 유사성은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따스한 언어이기에 공감이 간다.
에스키모인의 속담에 “어제는 재이고, 내일은 나무이다. 오직 오늘만이 밝게 타오르는 불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도 있지만, 현재에 충실하게 살다 보면 빛나는 내일이 기다릴 거라는 암시를 준다. 나는 지나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오늘은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기쁨과 희망을, 그리고 내일은 손가락 두 마디만큼의 행복을 지니며 살고 싶다.”라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과연 올 한해를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늘어지는 몸과 마음에 나이 탓이라는 변명을 붙이며 혼자서 위로하고 대충 위로받는 생활을 해온 것은 아닐는지.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라고 특별히 달라지는 삶을 살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읽어봐도 한 번 더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를 목에 걸린 가시처럼 품고 살 때도 있다. 이제는 일을 놓고 편히 살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아직도 24시간이 아쉬운 듯이 살고 있다. 나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편이다. 지금 걷는 길이 어떠한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만은 갖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지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같은 공간과 시간대에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난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자신을 사랑하고, 매 순간을 사랑하며,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지며, 그 모든 순간이 모여서 나의 인생이 된다.’ 는 사실을 기억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기를 감동하게 해줄 수 있는 가슴의 떨림이 있어야 최선을 다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경북 왜관의 베네딕트 수도원에 가면 방문객들에게 주문 같은 울림을 주는 라틴어가 입구의 돌에 새겨져 있다.
“Hodie Mihi (오늘은 나에게)
Cras Tibi (내일은 너에게)”
글 : 황현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