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고 싶은 중세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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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변해가는 햇살의 느낌 속에서 남반구의 가을을 맞이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계절이 이렇게 조용히 바뀌어 갈 때면, 나는 지난해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던 그 가을날들을 떠올려본다. 수 세기 전의 오래된 성들과 길게 뻗어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마을들, 그리고 낯선 길 위에서 느꼈던 설렘과 기대감이 아직도 나를 들뜨게 한다. 여행은 이미 끝났지만, 그때의 풍경과 느낌은 여전히 나를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나의 유럽여행은 학교를 은퇴하고 나서 세웠던 버킷리스트 가운데 첫 번째로 이루고 싶었던 희망이었다.
나의 여행지는 바바리아로 널리 알려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시작되는 여행으로 계획을 세웠다. 바이에른의 곳곳에 자리한 중세의 성들을 찾아가는 길 위의 여정이었다. 절대 짧지 않은 여정이었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이동 거리 또한 가볍지 않은 도전이었다. 9월이 시작되는 첫 주, 나는 첫 여행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싱가포르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브리즈번 공항을 출발해 유럽대륙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24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의 첫날을 맞았다. 독일의 금융 중심지로 널리 알려진 도시이지만, 마인강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의외로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강물과 중세의 유럽풍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여행자에게 중세의 흔적과 현대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내 관광은 유로 타워(유럽 화폐의 상징물) 앞에서의 사진 촬영으로 시작되었다. 그 상징물 앞에서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내가 왔다. 내가, 독일에 왔다.”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의 구 시가지이며 명소인 ‘뢰머 광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뢰머 광장에 들어서면 중세시대의 오래된 그 시간 속으로 들어선 듯 순간적인 착각을 일으킨다. 퍼즐처럼 맞춘 듯 작은 돌로 깔린 광장 한가운데에 서면, 붉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가진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동화책 속의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중세의 상인들이 막 장터를 열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오가던 장면이 아직도 이곳에 남아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사뿐히 걸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중세 기사 복을 입은 멋진 기사들이 말을 타고 골목 한편에서 나타날 것 같은 동화 속의 세계로 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광장의 중심에는 분수가 하나 서 있었다. 오래된 석조 분수 위에는 정의의 여신이 조용히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543년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의 동상은 각 손에는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칼은 법의 엄격한 집행을, 저울은 공정함과 평등을 상징한다. 영어의 Justice가 바로 유스티티아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탓인지 여신의 얼굴이 지혜로운 재판장의 모습으로 보였다. 분수대 옆에는 여행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거나, 광장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내가 바로 그 역사적인 광장의 거리에 서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게 여겨졌다. 광장을 바라보고 서 있는 붉은 건물이 바로 ‘뢰머(Römer)’라고 불리는 시청 건물이다. ‘뢰머’는 ‘로마인’ 또는 ‘로마시민’이라는 뜻으로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14세기에 지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분홍색 건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크푸르트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 역할을 해 온 곳이다. 신성로마제국 시대에는 황제가 선출된 뒤 이곳에서 화려한 축하 연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유럽 역사의 한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프랑크푸르트는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뢰머 광장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이 도시가 얼마나 길고도 깊은 역사를 품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여행자는 그 시간 속을 잠시 함께 걷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점심은 독일 전통 음식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학센(독일전통 돼지고기 요리) 과 절인 양배추, 구운 감자와 흰색 소시지 그리고 뮌헨 맥주를 시켰다. 소시지를 잘라서 한입에 먹으니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청량하고 신선한 한 잔의 맥주는 긴 시간에 걸친 여행자의 피로를 한 방에 날리기에는 충분했다.
뢰머 광장을 걸어 나온 뒤 몇 걸음만 더 옮기면 자연스럽게 강 쪽으로 길이 열린다. 광장의 돌바닥을 밟으며 지나온 중세의 시간이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마인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프랑크푸르트의 오래된 중심지에서 강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짧은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곧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웅장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이다. 첨탑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이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고 한다. 육중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야가 넓어지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의 진동이 전해졌다. 성모상 앞 봉헌 대에 작은 초 하나를 올려 불을 밝히고,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성당 안의 고요함에 나를 맡기며 조용히 침묵 속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바쳤다. 성당 앞 광장에 서서 95m의 첨탑을 올려다보니, 신앙과 권위의 무게가 조용히 내게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대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시야가 갑자기 환하게 열리며, 마인강이 넓게 펼쳐지고, 그 위로 철제 보행자 다리 하나가 우아하게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19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이 다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강을 건너며 산책을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뢰머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생가(Goethe House)가 있었다. 괴테(1749–1832)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이 집은 그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공간으로,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사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의 구상도 이 집의 서재와 가족이 머물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입구의 책상 위에는 한글 안내문이 놓여있어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방과 방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오래된 나무바닥을 밟아보았다. 발걸음 아래에서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마치 오래된 시간의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이 집 안에는 화려한 장식 대신 고요한 사유의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담한 정원이 있는 곳의 벤치에 잠시 앉아서 글을 쓰고 있던 18세기의 문학가, 요한 볼프강 괴테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괴테의 생가에서 단순히 한 작가의 생가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상상력과 시간이 처음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공간을 잠시 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공감하는 마음으로.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 날의 여정으로 가는 길을 준비해야만 했다. 수백 년 전의 숨결이 스며있는 중세 독일의 멋진 성이 있는 맨하임, 그리고, 대학의 낭만과 문학, “황태자의 첫사랑”이 전설처럼 살아 숨 쉬는 하이델베르크를 향해서.
글 : 황현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