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오른쪽 뺨과 왼쪽 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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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orth Point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인 앤디 스탠리(Andy Stanley)는 최근 설교 시리즈 “종교가 정치를 만났을 때 – 편을 선택하기, When Religion Meets Politics Parts2 – Choosing Side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우파에서 설교 요청이 들어오면 설교할 수 있고 좌파에서 설교 요청이 들어와도 설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중의 “정치 필터”에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예수님은 극단적인 좌파가 되시기도 극단적인 우파가 되시기도 한다고 한답니다. 양쪽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심지어 동일한 주님의 말씀까지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 필터”가 우선이냐 “정치 필터” 우선이냐고 질문하면서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교회가 나뉘어서는 안된다고 외칩니다. “신앙 필터”가 “정치 필터” 보다 우선되고 주께서 본을 보이셨듯이 정치적으로 다를지라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뉴욕의 리디머(Redeemer) 장로교회 창립 목사 팀 켈러(Tim Keller)는 2018년 9월 뉴욕타임스 기고문 “그리스도인은 양당 체제에 어떻게 적응합니까? 적응하지 않습니다. How Do Christians Two-Party Systems? They Don’t”에서 교회, 신앙을 하나의 정치 정당과 동일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 우리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방법은 권력을 차지함으로 써가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영광과 권세를 내려 놓으시고 십자가에서 섬기고 죽으심으로, 칼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 못을 박으심으로써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게 하고, 주인과 노예,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 자와 아픈 자, 다른 인종의 사람들, 이념이 다른 사람들, 원수까지도 하늘 가족이 되게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정치적 메시지 보다 우선합니다. 우리에겐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할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마 20:28/막 10:45)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들(성도)”라고 부르고(고전 1:2) 예수님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선언합니다.(엡 1:21, 골 1:18) 예수님은 우리가 다니는 개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전세계 수 많은 크리스천들의 머리가 예수님이시란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꽤 오랫동안 기독교의 핵심 가치들은 무너져 왔습니다. 세상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 그랬습니다. 정치로 교단이, 교회가 나눠지고, 성도들이 분열되었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주장이 넘쳐 나고, 진리를 선포하기 보다 가짜 뉴스를 퍼나르고, 가짜임이 밝혀졌음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슬며시 지나가 버립니다. 

교민 사회에서 일어나는 루머의 폐단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돈, 힘, 비자로 존귀한 영혼들을 이용하고 자신을 낮추기 보다 높이기 바쁩니다. 오죽하면 교회 안에서 축복송까지 하기 힘들다고 합니까? 죄의 자정 능력이 정말 우리에게서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딤후 3:5) “서로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더욱 강하게 세우지”(엡 4:12) 못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지”(엡 4:13) 못하게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급기야 곳곳에서 교회 대탈출, 신앙 졸업(?)이 쓰나미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속상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절망에 빠질 것까지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여전이 유일한 소망 주님께서 계십니다. 이미 주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온 우주를 지금도 경영하시고 계십니다. 황폐해질 찌라도 주님의 계획 안에 있고(사 6:11), 황무지가 되더라도 예비된 거룩한 자손들이 그루터기가 되어 다시 싹이 날 것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 6:13) “한 번도 바알에게 절한 적 없고 바알의 우상에게 입을 맞춘 적이 없는 칠천 명”(왕상 19:18)을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마태복음 5:39 “… 만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 대라.”

보수건 진보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한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머리이신 한 몸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무조건적인 희생의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아버지 집에서 언젠가 만날 사람들입니다.(요 14:2-3) 보수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뺨을 맞을 때 진보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뺨을 돌려 대고, 진보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을 때 보수 기독교인들이 나 먼저 때리라고 막아서 준다면 어떨까요? 

하덕규 목사의 “좋은 나라” 노래 가사처럼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 지도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평화의 왕이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이리와 어린 양이 평화롭게 살며, 표범과 새끼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어린 황소가 함께 다니고, 암소와 곰이 사이 좋게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 앞에서 장난치고, 어린아이가 살모사의 굴에 손을 넣는 일(사 11:6-8, 10)이 뉴노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본다면”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해지지 않겠습니까?(빌 2:3-4)


주의 친절한 팔에 안깁시다!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깁시다! 

영원하신 팔에 안깁시다!

그리고 그 팔로 저쪽을 안읍시다!

세상 모두가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게 될 그날까지…



푸른파도교회 김도윤 목사 (0411 725 639)

호프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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