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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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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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한복음1:44-50)


스펜서 존슨의 저서 중에 ‘선물’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입니다. 소년이 그 선물을 찾아가는데 어떤 노인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소년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꼭 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소년은 공부한다고, 일한다고 바빠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그때 다시 노인을 찾아가 그 선물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노인은 그때마다 “그 선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이라고 말해줍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 답을 찾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일터와 가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탐색을 마치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얻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발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 이었습니다. 지금을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면 후회없는 과거도 희망찬 미래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나다나엘입니다. 오늘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다나엘에게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빌립입니다. 빌립이 먼저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립보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두 명 더 있었는데,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친구 나다나엘에게 소개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 덕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 이름 중에 나다나엘이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만 두 번씩이나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만 ‘나다나엘’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을 만난 장면에도 나다나엘의 이름이 나옵니다. 요한복음21:1,2절에도 ‘나다나엘’ 이란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도대체 누구일까요?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입니다.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나다나엘이 바로 바돌로매입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다나엘은 빌립의 전도에 선입관과 편견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무화나나무 아래의 나다나엘을 바라 보시면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라는 칭찬을 했다는 것을 안 후에 나다나엘의 마음이 조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 는 말은 유대들이 자주 쓰는 숙어같은 표현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경건한 자들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토라(율법)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라 생겨난 말입니다. 


마음에 문이 열린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대하여 다음과같이 고백합니다. “본문 49절에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즉,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날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나다나엘이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번째는, 예수님은 사람들의 아버지와 아들의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혼하셔서 아들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하셔서 그녀와 함께 아들을 나으셨던 것이 아닙니다.예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요1:1,14). 예수께서는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가복음 1장35절은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선언합니다.


두번째로,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 대제사장이 요구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태복음26:63). 이때 예수께서는 “네가 말한 대로 그러하다”고 답하셨습니다. 또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태복음26:64)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주장하며 고소하였습니다(마태복음26:65-66). 후에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주장합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한복음19:7). 왜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신 것이 신성모독 죄로 여겨지며 또한 사형 선고를 받아야만 합니까?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어구로 무엇을 뜻하시는지 정확히 이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질이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은 이를 신성모독 죄로 본 것입니다. 결국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즉,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과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난 것은 일생에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 또한 크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올해, 지금, 사순절을 보내시면서 지금, 나의 삶을 통하여,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금, 고백함으로 크신 하나님의 선물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골드코스트장로교회

곽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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