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시편13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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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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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혼자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첫째로는 삶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입니다. 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그 문제의 무게감은 나를 짓누릅니다. 이 때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깊어집니다. 둘째로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때입니다. 때로는 가족도 친구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나는 정말 혼자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도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의 무서운 추격을 받으면서 고독과 두려움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성경의 시편 가운데에는 다윗이 쓴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시편, 여러 곳에서 그는 두려움과 고독의 몸부림 속에서 하나님에게 도우심을 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한 다윗이 시편의 후반부 쪽에 있는 오늘 시편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훌훌 털어버리는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확실히 경험하여 알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1.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입니다. (1-4절)


오늘 시편 본문의 1절에서 4절에는 ‘안다’는 단어가 5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도 아시고 내가 무엇을 말할 지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아신다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내 연약함, 내 죄성을 아시는 주님은 정말 부담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주님, 저는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옵니다. 저를 받아주세요.” 이 겸손함을 주님은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4:6에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쓰여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잘 아신다는 것은 부담감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를 잘 아시기 때문에 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잡혀 가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밀려와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에 대한 배신에 대해 누가복음12장 9절에서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나도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배신자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와 관계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가셨고 만나셨습니다.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귀한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뒤, 그 죄책감에 깊은 눈물을 흘린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 안에 거주하시면서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생생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사건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자비를 불러오는 복 중의 복입니다.


2.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5-6절)


5절에 보면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주셨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언젠가 건물이 무너지는 큰 사고 속에서 인명 구조하는 소방관들을 통해 아기가 구조되었는데 그 아기의 엄마가 그 아기를 감싸서 아기는 살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엄마는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희생입니다.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나를 감싸 주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이 그 엄마와 다른 것이 있다면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셔서 영원히 나를 보호하시며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비롯한 시편의 기자들이 체험한 것은 하나님은 원수의 함정에서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며 두려움이 밀려올 때 우리의 견고한 산성과 요새가 되셔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3.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7-10절)


9절에 보면 “내가 동녘 끝으로 가도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바다 끝 서쪽에 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스올에 내가 있어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8절) 스올은 무덤입니다. 죽음입니다. 죽음의 상황입니다.


자동차가 없었던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동물이었거나 도보였습니다. 특히 걸어서 먼 길을 여행을 하였습니다. 자동차가 조금 있었지만 가난했던 1940년 전후에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왕복 8시간 정도를 걸어 다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목사님은 외롭지 않으셨습니다. 혼자 걷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걸으시며 친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낙심하며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던 두 제자에게 주님이 함께 해주시며 동행하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의 체험을 통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순교의 길이야 말로 정말 외로운 길이 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이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그는 주님의 손을 잡고 순교의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오른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계십니다. 또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강하신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10절) 내가 혼자 걸어가야 할 그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불 빛 하나 안보여도 폭풍이 불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히 주님 손을 잡고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골드코스트 사랑의교회

고광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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