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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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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시간 

A Time to Serve, Not Kill


신명기 19:21 “너희는 이런 일(거짓 증언)에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라.”(출 21:24, 레 24:20)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은 존 그리샴의 소설 원작으로 제작, 상영된 영화입니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서 10살 흑인 소녀가 두 명의 신남부연합주의자들(백인우월주의)에 의해 강간, 폭행을 당하고 강가에 유기되지만 간신히 살아납니다. 소녀의 아빠는 한 때 자신의 동생 변호를 맡았던 백인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변호사는 그들이 강간범임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법정에 들어가는 그들을 죽여 체포되고, 자신도 딸이 있는 변호사는 결국 아빠를 변호하게 됩니다. 담당 검사는 이 사건을 미래를 위한 정치 발판으로 이용하려 하고 백인우월주의자 판사는 흑인 지역에서 재판 받지 못하게 해 배심원들이 모두 백인으로 구성됩니다. 여러 불리한 상황에서 아빠는 무죄를 주장하고 변호사는 배심원들 앞에서 최후 변론을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모든 법적인 계략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진실(Truth)입니다. (중략)

우리 안의 무엇이 진실을 찾습니까? 우리의 ‘생각(Minds)’입니까? 아니면 ‘마음(Hearts)’입니까? 

저는 흑인 남성이 남부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고 우리 모두가 법 의 ‘눈’ 아래서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건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법의 ‘눈’은 사람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눈’이고 우리가 서로를 동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정의는 공평하게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편견만이 반영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동등하게 볼 수 있을 그날까지 하나님 아래서 진실을 찾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말고, 두려움과 증오가 공통점을 편견으로 바꾸는 우리의 ‘생각’으로 말고, 그런 것을 모르는 우리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모두 눈을 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고, 여러분 자신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어느 화창한 오후 식료품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어린 소녀를 상상해주십시오.”


그러면서 변호사는 그 소녀가 당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납치, 포박, 벌거벗김, 강간, 생식기 훼손, 맥주 캔 던져서 살 찢기, 오줌 누기, 교수형 시도, 나뭇가지가 끊어져 실패하자10미터 개울 바닥에 던지기까지… 마지막에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 소녀가 보이십니까? 강간당하고, 구타당하고, 가해자들의 오줌에 젖고, 정액에 젖고, 자신의 피에 젖어 죽도록 내버려진 그 소녀 말입니다. 그 소녀가 보이시나요? 그 어린 소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변호사는 울먹하며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Now imagine she’s white! (이제 그녀가 백인이라고 상상해보십시오!)

(잠시 침묵)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배심원들, 방청객들, 검사, 판사, 피고인 아빠까지 당황합니다. 모두가 이미 피해자를 당연히 흑인으로 설정하고 있었는데 변호사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고는 피해자를 백인이라고 상상하라니… 


마태복음 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로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눅 6:29-30)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인들의 세상에서 흑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가 받은 처벌이, 백인이라면 받아야할 처벌 보다 너무 무거운 것 아닌가요?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꽉 차 있어야 할 리더들, 크리스천들이라면 상대방을 증오, 배척, 분쟁, 대결/대적, 이용, 조종, 착취, 군림하지 않고 사랑과 용납, 화평, 섬김,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당 세상일 때 국민의 힘이 잘못했을 때 국민의 힘이 받은 비판과 정죄는 민주당이 받았어야 했던 것보다 더 컸던 것 아닌가요? 지금 용산과 국민의 힘 세상에서, 반대의 세력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며 던지는 비판과 정죄는 용산과 국민의 힘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 보다 너무 심하게 큰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초법적, 무법적, 편법적, 반기독교적인 행위를 하고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문제, 사람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해도 되는 건가요? 남의 눈의 티끌만 잘 보고 자신의 눈의 큰 통나무를 보지 못해도 되는 건가요? (눅 6:42)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 6:7) 죽이려 하면 죽임을 당하고, 섬기려 하면 섬김을 받을 것입니다. 타임 투 킬의 영화 장면처럼 눈을 감고 비난과 정죄를 보내는 세력이 사실 자신과 자신의 세력이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누워서 침뱉기’라고 여기면 어떨까요? 

고대근동에서 시작된 동태복수법(Lex Talionis, 피해자의 상해, 손해를 가해자에게 그대로 보복함)은 예수님께서 폐기하시고 원수 사랑의 계명(마 5:44)을 주셨습니다. 보수던 진보던 크리스천 모두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랑과 섬김의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높고 높은 곳에서 낮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빌 2:5), 정치적 가치보다 기독교 가치가 우선인 크리스천들을 주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남에게 십자가를 지우는 대신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원수를 죽이지 않고 용서하고 섬기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죽여야 할 시간이 아니라 섬겨야 할 시간입니다!


김도윤 

푸른파도교회 목사

Hope College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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