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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쟁반위에 드리는 냉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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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쟁반위에 드리는 냉수 한 그릇”

곽석근 목사(골드코스트장로교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0:40-42)


우리가 잘 아는 리빙스턴은 아주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위하여 헌신을 약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한 시골 교회에서 아프리카의 의료 사업을 위하여 선교헌금을 거둘 때, 헌금 쟁반을 바닥에 놓아 달라고 한 후 자기가 성큼 올라가 앉았다. 그러자 모든 교인들이 이런 무례한 소년을 보고 격분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리빙스턴이라는 소년은 눈을 반짝이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바칠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아프리카를 위하여 몽땅 바칩니다.’라고 했다. 결국 그는 그 약속대로 의사로서 아프리카의 첫 선교사가 되어, 그 검은 대륙을 위해서 주님께 헌신했던 것이다. 그가 16년간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다가 영국으로 일시 귀국했을 때 글래스고우 대학은 리빙스턴 선교사에게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학위 수여 연설을 통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 결심을 이렇게 발표했다. ‘사나운 맹수와 질병, 혹독한 기후, 말이 안 통하는 야만인 가운데서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 말하기를 ‘바로 이 말씀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 말씀이 한 번도 나를 낙심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나의 생을 보낸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만 희생이 아닙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빚을 조금 갚으려고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찌 희생이라는 고귀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과, 마음의 평화, 그리고 앞으로 누릴 영원한 소망을 안겨다 준 것들인데 어찌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한 번도 희생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일 뿐 입니다.’ 라고 한 것이다.


본문의 “냉수 한 그릇”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 도 있다. 그러나 동네마다 예수님을 전하러 다니는 제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란, 가뭄에 단비와 같이 갈증과 두려움으로 무장된 제자들에게 큰 기쁨과 확신을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예수님의 복음이 사회 전체에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냉 수 한 그릇을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묵시적인 동의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리빙스턴이 소년시절에 헌금 쟁반에 자신을 드린 것은 어떤 면에서 이를 받으시는 예수님에게는 냉수 한 그릇의 기쁨과 만족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당시의 큰 돈의 헌물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이 바라볼 때에는 황당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냉수 한 그릇과 같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소년 리빙스턴의 순수한 마음을 보시기에도 그러하고, 자신 전체를 드리는 헌신 또한 그렇게 보였으리라 생각이 되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은 소년 리빙스턴과 같은 쟁반위에 헌신은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그저 예화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 일까?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쟁반 위에 헌신을 바라보시면서 냉 수 한 그릇의 시원함을 느끼셨다면 그것은 단순히 행위가 아니라 소년 리빙스턴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보실 때에 예수님의 마음도 냉 수 한 그릇을 드시는 것 같이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들도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향한 예배의 자리를 지키다면, 예수님은 그 모습 속에서 냉수 한 그릇의 시원함을 느끼실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어린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에, 이를 보시는 예수님은 그 모습속에서 냉수 한 그릇의 시원함을 느끼실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나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며 행동하려 한다면, 이를 보시는 예수님은 그 모습 속에서 냉수 한 그릇의 시원함을 느끼실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십니다. 신명기 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러한 작은 믿음의 행위들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려고 할 때에 그 행위들은 곧 헌금 쟁반 위에 나를 드리는 행위들이 되어질 것이다. 아무리 작은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6월달 시작하면서 특별히 헌금 쟁반 위에 자신을 드린 세상의 모든 선교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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