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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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린도전서1:2)
일본의 토키치 이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살해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감옥에 갇혀 사형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캐나다 여인 두 명이 그를 방문하여 창살 너머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맛살만 찌푸렸을 뿐,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여인은 포기하고 성경만 건네주고 떠났습니다.
어느 날 이시는 그렇게 받은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침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에 그만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 구절에서 멈추었다. 마치 17~18cm 가량 되는 대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강퍅한 내 마음이 변했다.”
나중에 그를 형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온 간수는 자기가 예상했던 야수 같은 강퍅한 인간이 아니라, 얼굴에 광채 나는 웃음을 띤 사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살인마 이시를 찾아왔고, 그가 거듭났던 것입니다.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 톰 휴스턴
성경에 보면 떼로는 연약한 자를, 때로는 악한 자를, 때로는 실패한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자주 발견합니다. 아니 모두 그러한 이야기로 되어있는 것이 성경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울이었던 바울이었으며,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며, 이방인여인을 사랑했던 삼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개인이 아니라 타락한 한 도시를 찾아오신 사건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 성읍의 인구는 자유인이 약250,000명,노예가400,000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숫자상으로 고린도는 헬라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고린도 지협의 바로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여행자들과 상인들의 교차로였고, 고린도에는 두 개의 항구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린도는 무역과 세금으로 인하여 부를 누리는 도시중에 하나였습니다. 또한 그 부로 인하여 고린도가 아테네와 같은 학문적인 도시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는 전형적인 헬라 문화의 특색과 지니고 있었고, 시민들은 헬라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도서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종교도 발달하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적어도12개의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다. 신전들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 중 하나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이었는데, 이 여신의 숭배자들은 종교적인 타락한 행위를 자행하곤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린도의 부도덕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에 고린도의 타락을 지칭하는 말이 있다. ‘고린도 사람처럼 행하라’ 라는 말로 고린도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헬라어 코린티아조마이(Korinthiazomai)가 생겨난 것처럼 당시의 고린도는 그야말로 타락의 도시였다.
그런데 이러한 고린도에도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교회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의 철학의 발달은 많은 이단사상들을 만들어내고, 우상숭배는 타락된 여러가지 상황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린도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며 감격합니다. 그 죄악의 도시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부르시고 시와 때를 따라 찾아오셨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라고 증거합니다. 고린도라는 죄악에 도시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죄인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이라는 단어입니다. 앞과 뒤가 같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룩하여지고’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단한 노력을 보여주시는 듯 합니다.
여기서의 핵심적인 부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입니다. 이 의미는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룩함을 향하여 끊임없이 변화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은 다 알겠지만, 자녀를 낳는 것도 힘들지만, 자녀들을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고 죄악된 도시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그 교회를 거룩하게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당시 고린도의 문제 만큼이나 고린도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성장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마음 또한 동일합니다. 우리들을 교회로 세우실 뿐 아니라 여전히 거룩한 성장을 위하여 애쓰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 입니다.
“또 각처에서 ............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각처에서”라는 단어에서 큰 은혜를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을 뿐 아니라 이 교회를 거룩하게 성장시켜서 성도가 부름받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가 번져나가 “각처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의 확장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장 18∼20절
각처에서 예수님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복음을 각처에 전하는 일을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교회의 전도와 선교의 사명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나의 주변의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모을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부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의 자리에 늘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교회를 에클레시아라 부릅니다. 이는 세상에서 불러낸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중에 있는 나를 부르셨고, 거룩함으로 성장시키셨으며, 그리고 각처에 사람들은 불러모으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를 생각할 때마다 벅차오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합니다. 아멘
골드코스트 장로교회
곽석근 목사 0409 995 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