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블레포”의 눈으로 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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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그들의 직업, 학력, 사회적 지위, 물질의 소유 등을 통해 그들을 판단하곤 한다. 무슨 차를 타는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직업군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한다.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그러한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회가 만든 시스템 속에 살다 보니, 사람을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지금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를 만들어온 ‘과거의 것’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람을 만든 과거의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에 의해 만들어진 그 사람이, 미래에도 똑같을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과거의 그, 현재의 그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그 사람은, 앞으로 되어질 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엠블레포’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어부와 세리 등의 직업을 가진 자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왜인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실 때, 그들의 외적인 데이터, 즉 직업이나 지위, 학력 등으로 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이 가진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의 경력과 이력 등 그들을 ‘데이터’로 보셨고, 과거의 것으로만 그들을 평가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로 선택한 사람들 중 그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합당하다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그들을 ‘데이터’로 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실 때, ‘엠블레포’의 눈으로 보셨다. 헬라어로 ‘엠블레포 εμβλεπω’는 ‘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다는 것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본다는 것은, 내면을 보고, 깊은 것을 보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는,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엠블레포’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의 현재 모습으로 그 사람을 보지 않고, 앞으로 될 그 사람을 기대하는 눈으로 보아야 한다.
때로는 자녀들을 보고,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서고, 소망을 품을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기로 결정하라. 이제부터 사람을 볼 때, 그들의 현재 상황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그 대신 ‘엠블레포’의 눈으로 그 사람을 보되, 그들이 행할 일들에 대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고, 그들이 행할 일들을 기대하며 그들을 보고 격려하길 바란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눈은 ‘예수님의 눈’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수님께서는 ‘엠블레포’의 눈으로 사람을 보셨고, 그들을 신뢰하며 사랑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을 데이터가 아닌, 앞으로 될 사람으로 기대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 눈으로 사람을 보고 대하자. 이 눈으로 영혼을 축복하자. 이 눈으로 사람들을 격려하자.
오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에게 ‘엠블레포’의 눈으로 보이는 그 사람을 축복하면 어떨까?
골드코스트 온누리교회 유정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