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칼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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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접하며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움이 누구에게는 분명 편리함과 유익이 되지만 반대로 누구에게는 불편함과 손해가 됩니다. 복음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복음의 새로운 소식은 이방인들에게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그들에게 유대교의 신앙의 틀을 과감히 깰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특권만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호와 신앙에 관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없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롬 9:4-5)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 이게 다 특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을 타고 났습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민족일 정도였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 우리가 사는 호주도 예수를 믿기 참 좋은 환경입니다. 복음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그걸 믿는다고 핍박을 받지도 않습니다. 주변에 교회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들은 다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구원자와 주인으로 믿는 믿음은 내가 믿기 좋은 환경에 있다고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에 잘 믿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교회를 출석하고, 심지어 내가 이전에 하나님의 기적을 본 적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관한 이런 특권은 그냥 특권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특권”이 있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권만으로 믿음이 생기고 또 구원에 이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둘째로 약속의 말씀은 여전히 역사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말씀의 역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선언합니다. 그 예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롬 9: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 아브라함은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믿음의 계보를 잇는 아브라함의 씨로 불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삭과 그의 후손만 그렇게 불릴 수 있을까요? 이삭이 특별히 잘나서 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그렇게 불리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 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이 말씀 그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존재)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인 복음을 믿으면 우리 마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인으로 마음에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약속의 자녀가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존재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하는 주장은 중요한 두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요건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선택하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완전히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죄를 짓습니다. 둘째 요건은 “공평한지 여부를 주장하려면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반대로 누가 선택을 받지 못하는지 정확히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100% 정확히 판별하지 못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선택 받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선택 받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이 공평하지 않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설립될 수 없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당연히 감사해야 합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고 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던 내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내 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밖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만 있을 뿐이다. 이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렸고 또 살아가게 합니다.


골드코스트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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