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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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미워하던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것에 평생을 헌신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삶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이었던 바울입니다. 예수신앙은 단순히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으로 출발하지만, 반드시 삶을 통해 완성되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바로 이 진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바울, 곧 사울은 유대의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철저했고, 누구보다 유대신앙에 진심이었습니다. 그 열심과 진심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험한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핍박하고, 옥에 넘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사울의 문제는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진리 위에 서 있지 않았고,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대적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확신은 때로 무지보다 더 위험합니다.
그의 인생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완전히 뒤바뀝니다. 하늘로부터 비추는 빛 가운데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순간, 그의 모든 신앙체계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고백은 “주여 누구시니이까”였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시작이었다. 이 만남 이후,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었고, 이 변화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깊어졌다. 부활의 신비를 알기 위하여 평생을 예수님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빌립보서3: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먼저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자 그로 인한 불편함과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단순히 교리나 지식으로 아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예수의 삶에 실제로 참여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넘기는 가운데 그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고린도후서11:23-27) 예수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에서 실제로 함께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고린도후서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그는 더 깊은 위로를 경험했고,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과 배경을 의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오직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고난은 그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더 깊이 알게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더 이상 ‘설명되는 분’이 아니라 ‘경험되는 분’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알고 그의 흔적을 몸에 새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6:17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 고백은 단순한 고생의 표현이 아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예수의 증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몸에는 실제로 고난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매 맞은 자국과 상처들은 그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었습니다. 당시 ‘흔적’이라는 말은 종이나 군인이 주인에게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였습니다. 교회를 파괴하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결국 예수의 흔적은 단순히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바울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수를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을 알고자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죽였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은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고린도전서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욕심, 자기 계획,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 그것이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의 시간과 열정, 인생의 방향은 오직 주님을 위해 드려졌습니다. 이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편한 길보다 순종을, 이익보다 진리를, 자기보호보다 헌신을 선택했고, 그 선택들이 쌓여 그의 삶은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날마다 안에 있는 육신의 사람과 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사울이었던 바울의 삶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평생 주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울은 한때 예수를 적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한 감정이나 결단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여 경험했고, 삶에 예수의 흔적을 새기며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결국 날마다 자신을 내려놓기 위하여 육신을 죽이기 위하여 싸우는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이 예수를 알아갔다. 신앙은 단순한 열심히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 아멘.
골드코스트 장로교회
곽석근목사 0409 995 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