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작성자 정보
- 칼럼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149 조회
-
목록
본문
지금은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요 9:1-1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 세상이 큰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긍휼을 소망하면서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소경은 사물의 실체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가장 절망적인 사람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소경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발견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것은 예수님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1절). 이 소경이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닙니다. 소경이 어떻게 예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소경이 예수님의 눈에 발견된 것입니다. 이 소경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이 소경은 인생에 별 기대가 없는 사람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또한 걸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있긴 했지만 그 부모도 그를 버린 것 같습니다(8절). 그런데 주님은 이 소경에게 기적을 베풀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생명의 빛을 주길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소망 없는 생명을 먼저 찾아 나서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기적을 창조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고난을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고난이 죄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소경을 보면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죄 때문에 그런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에 대한 이런 전통적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셨습니다(2-3절).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이유를 다르게 해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고난을 축복이 됩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 못에 가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했더니 기적을 체험했습니다(6-7절).
코로나19를 포함해서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고난 때문에 더욱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시련의 때에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우스포트한인교회
장원순목사
0433 308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