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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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성인들의 경우 그들이 이제 막 교회에 나가기 시작 하고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부딪치는 “말씀”이 있다면 어떤 말씀이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너는 죄인이다!”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다!” 이미 육체적으로 성숙한 성인이 된 완전체인 자신에게 누군가 자신을 향하여 “죄인”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 간혹 이해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지은 과거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법을 어긴 그 범법 함을 인하여 “그래 나는 죄인 맞아”라는 인정일 것 일 텐데 그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갇혀서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온전히 깨닫지 못 할 때가 아주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우리가 학문적으로 배우고 또 경험으로 익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그 사회 공동체에서의 범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죄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죄인으로 죄를 깨달은 사람은 (이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조심하셔야 할 부분이기도 한데) 신앙의 차원을 자신의 행동 교정으로 이해하고 어떡하든,무슨 수를 쓰든 자신의행위적 선함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신앙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꼭 한가지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위에서처럼 행위적 선함을 추구하고 그렇게 살려 애쓰는 사람은 죄인일까요? 의인일까요? 여러분은 뭐라 정의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한자를 더 붙여야 하는데 그것은 “자칭”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칭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칭 의인 된 이들의 신앙 생활의 목적은 결국 여느 종교들처럼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상의 댓가로 이 세상에서의 이기적 행복 추구와 “자기 의” 쌓기 놀음일 뿐 천국의 확장을 위한 그 어떤 생명력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이라 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서 “외식하는 자들, 회 칠한 무덤들, 독사의 자식들”로 책망하셨고 또한 이렇게 결론 지으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마태복음 23장13절)”
예수님은 자칭 의인 된 자들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칭“죄인”된 자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죄”를 의미하는 “하마르티아”라는 말은 “과녁에서 벗어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과녁을 벗어나서” 구원의 생명력이 전혀 없는 아주 엉뚱한 쪽으로 향하고 말 것입니다.
창세기 아담에 의한 “선악과 사건”은 한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주권을 쟁취한 사건인데 이를 “원죄”라고 합니다. 이 원죄는 고스란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가되어 있어 인간은 누구나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감정대로 처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고 그래서 저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죽었습니다. 이제 저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옵소서”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자기 자신이 중심 되어서 하는 모든 것을 죄라고 합니다. 인간은 선할 수 없는 악한 존재입니다. 그런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어서 “하나님 저 잘 했지요?”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 뜻대로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고 자기 자신이 그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신앙의 성숙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훌륭한 기독교인이라 칭찬을 받는 사람일 지라도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몇 년째 지속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신앙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아직 신앙을 시작도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정말 엉터리 같은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여도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달아 알고 있다면 이 사람은 신앙의 길을 제대로 잘 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 신앙 생활이 아직 출발 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은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하려 하심이라 (고후 5:15)”
골드코스트 우리들 침례교회
이영철 담임목사
0421 579 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