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곁에 계신 분 / 요14: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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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이후, 사도들이 목격한 또 하나의 엄청난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승천(昇天, Ascension) 입니다. 이들은 죽었던 사람이 무덤에서 살아 나왔고, 이제는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경험적 세계에서는 상상에서나 가능했던 사건입니다. 천주교에서는 1950년 교황 비오12세가 성모승천을 교리로 체택하며 마리아 역시 승천한 것을 믿지만, 우리와 같은 개신교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승천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사도들의 신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고, 사도신경 가운데도 ‘하늘에 오르시어’라는 내용으로 예수님의 승천사건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공간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분리되어 이제 눈으로 그의 몸을 볼 수 없고, 귀로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현세적 경험이 불가능한 곳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예수님을 경험하기 위해 천상을 올라가야 할까요? 혹은 이 지상에서의 예수님 경험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러한 논리적 질문에 단적으로 답하자면 가능할 뿐 아니라, 실제로 ‘진행중’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영’을 진리의 영, 보혜사 등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의 번역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14세기 영국의 존 위클리프의 영어번역본에서는 보혜사를 ‘위로자’(comforter)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옹호자’(advocate) 혹은 상담자(counselor), 조력자(helper)등등의 의미영역이 존재합니다. 원문의 단어를 직역하면 파라-클레토스 즉 ‘곁에서 말하는 사람’정도입니다.
여기서 ‘곁에서’(beside)라는 의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문맥에서 하나님이 그의 곁에 계실 것이다. 혹은 우리(아버지와 아들)이 그 곁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요14:23) 구약적 개념에선 하나님이 ‘앞서’계시는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령과 수용의 관계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보내실 성령은 ‘곁에’ 계신 분입니다.(요14:17)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헤쳐서 정리하신 길을 가도록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때로는 위로로, 떄로는 옹호로, 때로는 매서운 가르침으로 우리를 ‘그 길’로 걷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그 길’이란 바로 예수님이 살며 말씀하시고, 말씀하시며 사셨던 계명입니다.이 계명을 가장 근사한 문맥내에서 살펴 본다면 13장34-35절에 나오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보혜사께서는 예수님의 새 계명인 ‘사랑’을 더욱 더 깊이 깨닫도록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선택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곁에 계신 분이고, 바로 그 사랑으로 우리는 성부와 성자가 내 곁에 계심을 알게 됩니다. 어느 순간 치열하고 퍽퍽한 삶 가운데서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등이 나타난다면, 성령께서 ‘곁에’ 계신 것입니다.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윤명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