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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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사무엘상20:30-34, 42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Hollywood 영화계의 멋지고 예쁜 여배우, 남자 배우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일으키며 팬들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단 이것은 미국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국인 한국 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있지만 가끔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켜서 그 명예를 실추시키는 배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들을 향해 “아름답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여러가지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배우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아무리 멋지고 예뻤던 남자, 여자 배우라 해도 세월이 지나면 노화로 인해 외모도 변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아름답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뭔가 정확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오늘 저는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 오면서 정말 아름다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 과소평가되었던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요나단(Jonathan)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보다 난 자식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난 아들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 보기 원합니다. 사울왕은 때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자신보다 더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인격도 리더쉽도 모든 것이 사울왕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늘 왕위를 빼앗길 까봐 불안해 하였고 그 마음이 결국 다윗을 향한 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달랐습니다.
그는 다윗과 친한 친구였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벗’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를 축복하는 좋은 벗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은 좋아했지만 사울왕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왕이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본심, 곧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지 아니면 안 죽이려고 하는 지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늘 함께 식사했던 왕의 식탁에 나가지 않고 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에게 왕이 자신을 향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살펴 봐 달라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윗이 식탁에 첫째날도 둘째날도 나오지 않자 사울 왕은 죽일듯이 분노합니다. 이에 요나단은 그 식탁을 박차고 나와 슬픔가운데 빠졌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벗, 다윗을 아버지가 죽도록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요나단은 다윗이 숨어있었던 들로 나가 다윗의 피신을 도우며 깊은 우정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요나단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첫번째로 그는 탐욕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나단도 왕의 재목이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웠고 용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 인해 백성들의 신뢰도 받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왕의 아들이 그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과 우정을 나누면서 다윗이 자신보다 더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아버지가 죽이려는 다윗을 돕습니다. 어떠한 면에서는 사울왕이 요나단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왕위에 욕심이 없습니다. 요나단은 무엇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계속 도와줍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거룩을 인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거룩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는 몸의 거룩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마음의 거룩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중 더욱 더 강조한 것은 마음의 거룩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거룩을 잃어버릴 때 몸의 거룩도 잃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거룩을 잃어버릴 때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거룩을 잃어버린 상태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탐심, 탐욕의 상태입니다. 골로새서3:5에서는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모든 관계에 상처를 안겨줍니다. 권력에 대한 탐심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킵니다. 성적인 탐심이 가정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안겨줍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이 다른 사람의 삶에 고통을 안겨줍니다. 사울 왕 역시 그 탐심으로 인해 사무엘 선지자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다윗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아들 요나단에게도 상처를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울왕은 그 탐심으로 인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는 정신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탐심을 갖지 않았던 요나단은 다윗이라는 좋은 친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가족을 다윗이 책임져 주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두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데 다윗은 그를 찾아내어 요나단에게 줄 영광을 그에게 다 주었습니다.
두번째로 그는 희생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옛날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기꺼이 양보하려 했던 요나단! 정말 그 마음의 큰 그릇에 아름다움이 가득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그의 희생과 섬김이 결국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다윗에게 왕위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단의 희생과 섬김을 사용하셨습니다. 탐심을 물리치고 희생과 섬김으로 일관했던 사람 요나단! 그의 아름다움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가만히 보면 탐심이 그리고 희생이 없는 삶이 가정을 어렵게 합니다. 또한 내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도 나도 행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정말 행복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아름다워지시기 바랍니다. 바로 요나단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면 큰 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것부터 요나단을 닮아가면 됩니다. 섬김도 희생도 또 탐심을 버리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름다움을 향한 작은 씨앗을 심을 때 언젠가 그것이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골드코스트 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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