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특허소송에서의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Preliminary Discovery)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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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특허소송에서의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Preliminary Discovery) 활용
-Pfizer Ireland Pharmaceuticals v Samsung Bioepis AU Pty Ltd [2017] FCAFC 193의 케이스를 통해 살펴본 최근 판례 동향
요약:
•특허침해 소송 제기 전 특허권자인 화이자는 침해 의심자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대로 특정 문건 제출을 요구하는 ‘사전 디스커버리’ 명령을 신청
•2016년, 1심(Federal Court of Australia): 화이자의 신청은 사전 디스커버리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에피스 손을 들어줌: 화이자 패, 에피스 승.
•2017년, 2심(Full Federal Court of Australia): 사전 디스커버리 요건은 제출된 증거(전문가 소견)에 대한 객관적 사실 여부가 아닌 화이자 측의 심증이 합리적인지를 묻는 것임. 화이자는 요건을 충족시켰음: 화이자 승, 에피스 패 – 에피스 측에 화이자가 요청한 문건을 제공할 것을 명령
•2018년 5월, 3심(High Court): 에피스의 항소 Special leave 신청 거부당함: 최종 화이자 승, 에피스 패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 적극 사용(상대의 특허침해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상대가 가진 정보를 받아보고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이 유명한 어구는 자신과 상대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있는 싸움, 즉, 전쟁이든, 협상이든, 스포츠 경기든 아니면 도박에서든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법정 소송 또한 마찬가지인데 상대가 가진 정보나 증거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 있게 소송에 임할 수 있고 혹여 자신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되면 최대한 송사를 피해 다른 해결 방법이 있는지 모색할 것입니다.
영미법 국가의 민사소송 절차 중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는 한국어로 증거 개시 또는 상대방에 대한 문서 제출 요구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디스커버리 제도는 사실심리 전 당사자 간 보유한 증거를 서로의 요청에 따라 제공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공판(hearings and trials) 전 상대가 가진 패를 확인함으로써 추후 예상치 못한 증거(surprise)와 맞닥뜨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상대의 증거를 본 후 소송을 계속할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합니다. 물론,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예를 들어 변호사-의뢰인 간 특권에 따른 보호 문서(client legal privilege))는 증거 제공을 거부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당한 요구에 불응하면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디스커버리 제도 덕에 많은 수의 소송 사건들이 중간에 당사자 간 합의(settlement)로 종결되고는 하는데, 서로가 가진 증거를 교환해서 검토해보면 어느 정도 승패를 가늠할 수 있고 법률비용을 계속 지불하면서 끝까지 소송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종결하는 것이 피차 이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미법계인 호주에서도 민사소송 시 이 디스커버리 제도가 큰 역할을 차지하는데, 호주 연방 법원 규칙(Federal Court Rules 2011) 제7.23조에서는 소송의 시작 전, 즉 소장을 제출하기 전에도 법원에 요청해 상대의 증거를 받아볼 수 있는 ‘사전 디스커버리’(Preliminary discovery) 제도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전 디스커버리’ 조항은 과거 매우 보수적으로 적용되어 법원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에게 민감한(통상 영업비밀에 가까운) 정보 또는 자료를 요청한다고 해서 기꺼이 제공해 줄 리가 만무하고, 보통은 이런 요구가 동종업계의 경쟁자 사이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신청인은 적극적으로 방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런 요구를 하는 신청인의 입장에서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섣불리 소송을 제기했다가 역풍을 받을 우려도 있고, 그렇다고 소송을 안 하자니, 상대(경쟁자) 제품의 시장 잠식이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아래 살펴볼 사건의 경우처럼 약품과 관련된 특허소송의 경우 그 제조 방법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소송 전 분석 절차가 매우 중요한데 상대가 가진 정보를 사전에 획득할 수 있다면 소송 여부 판단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될 것입니다.
아래 소개할 최근 호주에 있었던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Pfizer Ireland Pharmaceuticals)와 삼성바이오에피스 호주 법인(Samsung Bioepis AU Pty Ltd) 간의 소송은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다 이 ‘사전 디스커버리’에 대한 호주법원의 정리된 판례라 의미가 있습니다.
사건 개요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의 바이오젠이 합작해 설립한 바이오 의약품 전문 회사로 주로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고, 이렇게 개발한 복제 약은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생산한다고 합니다.
2016년 에피스는 호주의 식약청 격인 TGA(Australian Register of Therapeutic Goods)에 이타너셉트(Etanercept) 성분이 함유된 두 건의 약품을 ‘브랜지스’(BRENZYS)라는 이름으로 신청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 제품은 화이자가 특허를 갖고 ‘엔브렐’(ENBRE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화이자의 엔브렐은 이타너셉트를 이용한 최초의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현재까지 전세계 류마티스질환 치료제 시장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화이자는 에피스가 호주 TGA 승인을 획득한 ‘브랜지스’ 제품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의심되지만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할 만한 확증이 없었습니다. 화이자는 에피스가 호주 TGA승인을 위해 제출한 문건 중 ‘브랜지스’의 제조공정이 포함된 문건을 입수할 수만 있다면 자사 특허침해 여부에 대해 더 면밀히 판단 후 소송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화이자는 호주 연방 법원 규칙 제7.23조에 의거 ‘사전 디스커버리’ 명령을 구하는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에피스는 이 요구를 거부하면서 아래와 같은 법원의 1심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1심 Federal Court of Australia(단독재판부):
제7.23조에 따르면 법원이 사전 디스커버리 명령을 내려줄 수 있는 조건으로, 신청인이 그런 명령을 청구할 만한 자격이 있음을 합리적으로 믿고 있고; 여러 번 상대에게 문의했지만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했고; 상대가 해당 증거를 직접적으로 통제(보유)하고 있고; 상대의 증거를 받아보는 것이 소송 시작 여부에 도움이 된다는 합리적 믿음이 있을 경우 등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화이자의 제조공정기술 책임자인 Dr Ibarra는 자사 특허의 내용과 관련 제품의 제조공정에 대한 전문가 소견서(expert opinion)를 자사 법무부팀장인 Mr Silvestri에게 보고했고, 화이자는 Dr Ibarra의 소견에 따라 법원에서 에피스의 브랜지스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맞서 에피스 측은 교수인 Professor Gray의 소견서를 제출하면서 상대의 증거만으로는 에피스의 브랜지스 제품이 화이자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볼 만한 합리적인 믿음을 가지기에 불충분하다고 반박했습니다.
1심의 단독재판부(Burley J)는 화이자의 주장은 단순한 의심(mere suspicion)에 불과해 보이고 화이자가 제출한 전문가 소견은 에피스의 제품이 특허침해로 보인다는 합리적인 믿음(reasonable belief)를 갖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에피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나아가 Burley 판사는 브랜지스와 엔브렐이 바이오시밀러 제품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두 제품의 제조공정도 동일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에피스의 승, 화이자의 패였습니다.
2심 Full Federal Court of Australia - “reasonable belief” 에 대해 다른 견해
화이자의 항소로 열린 합의 재판부의 항소연방법원에서는 3명의 판사 모두 1심 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화이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합의 재판부는 호주 연방 법원 규칙 제7.23조에 대한 판단은 ‘침해 여부를 다루는 미니 재판(mini-trials)’이 아니며,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의 취지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정식 재판에 앞서 비용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당사자의 판단을 도와주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서로 배치되는 당사자 간 전문가 소견(특허침해 가능성 등)에 대해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를 따지는 사실 판단(factual correctness)이 아닌 화이자 측의 합리적 믿음이 중요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화이자 승, 에피스 패였고, 재판부는 에피스에게 요청받은 문건을 화이자 측에 제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3심 Application for Special leave to the High Court
2018년 5월 에피스는 호주 연방대법원(High Court)에 항소를 위해 특별허가(special leave)를 신청했지만, 연방대법원의 Nettle J와 Gordon J 판사들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틀린 점이 없음을 확인해주면서 특별허가를 거부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화이자 승, 에피스 패였습니다.
시사점
이 판결은 특허 침해 시 정황에 있어 사실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했던 기존 법원의 태도가 주관적(그러나 합리적인) 믿음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쪽으로 전환된 것을 보여줍니다. 즉, 제7.23조의 문구를 일반적인 의미(ordinary meaning)인 액면 그대로 해석해 신청인 측의 합리적인 믿음이 주관적으로 형성(subjectively held)된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통일된 의견이 나온 것입니다.
이는 특허권자에게는 희소식이고 시장의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판결입니다. 특허권자는 침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소송을 시작하지 않고도 상대의 증거를 받아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고, 이렇게 입수한 증거를 토대로 상대를 압박해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도 합의를 끌어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관련된 특허에서 점점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 원리) 등을 이용한 구조 분석이나 제조공정이 추리가 어려워지는 점을 고려하면 호주의 ‘사전 디스커버리’ 제도는 충분히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신청인 입장에서는 ‘사전 디스커버리’ 요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주관적인 믿음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런 믿음에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신청인이 제시한 근거에 대한 사실 여부 논쟁만으로는 상대의 창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현태 호주변호사, 상표변리사
H & H Lawyers
면책공고: 본 컬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필자 및 필자가 속한 법인은 상기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인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상기 내용에 기반하여 조치를 취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개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법률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문의: H & H Lawyers Email: [email protected], Phone. +61 2 9233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