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익숙한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투움바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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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피크닉 포인트(Picnic Point Park) 전망대에서 바라본 투움바 전경

 

호주의 동해안을 여행하면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백사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골드 코스트 또한 멋진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백사장이 황금빛 같다고 해서 지명에 ‘골드’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해변은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빈다. 필자도 골드 코스트 해변에 매료되어 바다를 많이 찾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해안을 벗어나 내륙에 가고 싶어진다. 문득 브리즈번을 오가며 고속도로 이정표에서 보았던 투움바(Toowoomba)라는 지명이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퀸즐랜드 내륙에 있는 도시로는 제일 크다고 한다. 인구도 13만 명이 넘는다. 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해발 700여 미터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동네라는 것이다. 


자동차 시동을 건다. 자주 다니던 1번 고속도로를 달린다. 투움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내륙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다. 브리즈번과 골드 코스트를 오가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한가한 도로다. 도시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온몸을 감싼다.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 갑자기 가파른 도로가 계속된다. 도시가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투움바에 도착했다. 낯선 동네에 갈 때마다 들리는 관광안내소를 먼저 찾는다. 친절한 직원이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전해준다. 직원에게 받은 팸플릿을 보며 갈만한 곳을 찾아 지도에 표시한다.


동네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피크닉 포인트 공원(Picnic Point Park)으로 가본다. 비탈진 도로를 따라 운전해 올라가니 공원이 나온다. 공원은 생각보다 한가하다. 그러나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는 나름대로 북적인다.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 노부부가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인생의 황혼기를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삶이 보기에 좋다.  


전망대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 보이는 높고 낮은 산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하얀 구름이 비단처럼 하늘에 펼쳐져 있다. 투움바 전경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전망대에서 필요 이상으로 오래 서성인다. 시야가 제한된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을 마음에 담아본다.  


전망대 아래에는 산책로가 있다. 산을 감싸며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폭포가 있다는 팻말이 보인다. 그러나 평소에 떠올리는 웅장한 폭포가 아니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은 도로나 건축물에 쓰이는 돌을 채굴했던 채석장이었다. 황량한 이곳에 높이 6미터 되는 작은 폭포를 만들고 주위를 공원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아담한 폭포 앞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생명의 근원인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내친김에 산책로를 끝까지 걸어본다. 수목 사이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데 또 다른 전망대가 보인다. 작은 분화구(Table Top Mountain)를 볼 수 있도록 조성한 전망대다. 수천 년에 걸쳐 화산재와 마그마가 만든 작은 봉우리가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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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전망대에서 바라본 작은 분화구(Table Top Mountain)

 

산책로를 계속 걸어본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공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엉뚱한 동네가 나온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공원까지는 거리가 있다. 계획에 없는 주택가를 산책하기 시작한다. 전망 좋은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정원을 가꾸는 집주인도 보인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경치가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관광지로 추천하는 일본정원(Japanese Garden)으로 향한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대학(Southern Queensland University)으로 안내한다. 공원이 대학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공원이 넓지는 않다. 그러나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자와 다리 등을 조화롭게 배치해 놓았다. 심지어는 작은 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이어령 교수의 책이 생각난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한 책이다. 한국 사람은 풍경이 좋으면 풍경에 들어가 자리 잡고, 일본 사람은 풍경을 작게 만들어 집안으로 가지고 온다는 내용이다. 보고 싶은 풍경을 축소해서 정원으로 가지고 온 일본인의 마음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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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대학(Southern Queensland University)에 캠퍼스에 있는 일본정원(Japanese Garden) 

 

하루가 저물어 간다. 시내를 둘러본다. 투움바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고풍의 건물이 제법 많다. 시내 한복판을 걷는데 노래방이라고 쓰인 한국어가 보인다. 뜻밖이다. 근처에 있는 쇼핑센터에는 제법 규모가 큰 한국식품점도 있다. 적지 않은 한국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즈음 웬만한 시골 동네에서는 한국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한국 사람이 호주 전역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모텔에서 하룻밤 지낸 후 투움바 주변을 자동차로 둘러본다. 시내를 벗어나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가 아름답다. 경치가 좋아 보이는 주택가에 들어가 본다. 발코니를 전망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주택이 많다. 이곳으로 이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동차로 주택가를 둘러보는데 막다른 도로가 나온다. 자동차를 세우고 주위를 보니 자전거가 많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곳이다.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험난한 자전거 코스도 보인다. 서너 대의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 옆에서 한 가족이 자전거 탈 준비를 하고 있다. 온 식구가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것 같다. 위험하지 않을까. 그러나 위험할수록 정신을 집중하는 효과는 만점일 것이다. 명상가들은 조용히 앉아서 정신 집중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정신 집중을 산악을 달리며 온몸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산에서 내려와 시내에 있는 장미정원(Rose Garden)을 찾았다. 장미가 많다. 곳곳에 종류가 다른 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지기 시작하는 장미가 많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가 지난 것 같다. 화려하게 피어 있는 장미를 골라 카메라에 담는다. 모든 장미가 꽃을 피울 때 오면 장관일 것이다.  


정원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커다란 고목나무가 있다. 고목 아래에 의자도 있다. 잠시 의자에 앉아 나무를 본다. 수백 년의 삶을 견뎌온 고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목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 있다.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다. ‘동네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가 황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 의해 찍혀 나갈 때, 마을에 남는 것은 주고받기와 시비와 깔고 앉음과 깔리움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고목에 상처를 입히며 살지는 않았을까. 후회되는 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삶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성인들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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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떠 올리게 한 고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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