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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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ng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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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코스트에 이사 와서 지낸 시간이 1년 가까이 되어간다. 예상은 했지만, 필자가 살던 동네(Forster, NSW)보다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실감하며 지낸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파란 하늘을 본 기억이 없다. 뉴스에서도 비 소식을 계속 전할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걷고 싶으면 자주 찾는 골프장도 걸핏하면 문을 열지 않는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기도 한다. 방구석에서 벗어날 기회다. 어디로 갈까. 인터넷으로 갈만한 곳을 찾아보니 빅토리아 포인트(Victoria Point)라는 낯선 지명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든다. 집에서도 멀지 않다.
오랜만에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여 운전한다. 평일 아침이지만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한가하다. 차창 밖 풍경은 그동안 내린 비가 깔끔하게 청소한 덕분에 산뜻하다. 방구석에서 뒹굴던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바닷가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의외로 넓은 주차장이다. 주차 시간도 6시간 혹은 12시간까지 할 수 있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선착장이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을 오가는 여객선을 위한 선착장이다. 섬 이름은 쿠치무들로 섬(Coochiemudlo Island)이라고 쓰여있다. 원주민 이름일 것이다. 발음하기가 어렵다.
선착장으로 걸어가니 여객선 안내판이 보인다. 가격이 50센트로 무척 저렴하다. 노동당의 선심성 정책 덕분에 누리는 혜택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반길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싣고 오가는 배도 있다. 그러나 운임은 75불로 제값을 받는다. 정부의 혜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이 마음을 끈다. 평일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배를 이용하고 있다. 배를 타고 싶지만, 선뜻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섬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섬 구경을 하러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산책한다.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정신이 맑아진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떠오른다.
오랜만의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그러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은 섬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결국 이틀 만에 다시 섬을 향해 집을 나선다. 간단히 먹을 것과 음료수도 준비했다. 초행길이 아닌 조금은 낯이 익은 도로를 따라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는 30분마다 다니기 때문에 특별히 시간표를 볼 필요가 없다. 조금 기다리니 배가 도착한다. 잠시 후 배가 선착장을 벗어나자 젊은 청년이 요금을 걷는다. 요금은 50센트이지만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현찰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객선 내부는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껏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울긋불긋한 반짝이가 기둥을 감싸고 산타클로스의 인자한 모습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와 관계된 장식은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웃과 나누며 지내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손님을 태운 배는 파도를 일으키며 10분도 걸리지 않아 섬에 도착했다. 선착장 근처 백사장에서는 남녀노소가 바다를 즐기고 있다. 오고 싶은 섬에 도착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다. 안내판을 보니 섬을 가로지르는 산책로가 있다. 섬 크기는 4.1제곱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걸어서 충분히 섬을 횡단(?) 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인도를 따라 걷는다. 후덥지근한 날씨다. 하지만 주위에 나무가 많아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바닷바람도 시원하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인도가 끝나는 곳에는 또 다른 백사장이 있다. 바닷가에는 할머니 혼자 카누를 바다에 띄우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동네 주민일 것이다. 나름의 은퇴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본다. 수영하기에 적당한 수온이다. 그러나 수영복을 준비하지 않았다. 천천히 해변을 따라 걷는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모래와 찰랑거리는 바닷물 감촉이 좋다. 중년의 남녀가 호젓한 해변에서 둘만의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낚시하는 사람도 지나친다. 제법 큼지막한 꽃게 비슷한 녀석들이 심심치 않게 바닷물이 찰랑이는 해변을 서성인다. 뜰채라도 있으면 많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에 시선을 빼앗긴 채 천천히 걷다 보니 선착장이 보인다. 선착장 주위를 둘러본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게시판이 눈길을 끈다. 각종 중고품 광고를 비롯해 요가 교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위한 시골장이 선다는 안내도 있다. 도로 건너편에 자그마한 카페가 보인다. 호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맥줏집도 보인다.
도로변에는 조금 오래된 집들이 보인다. 주민이라고는 85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병원은 물론 약국도 없을 것이다. 간단한 생필품을 사려고 해도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자연환경에 매료되어 정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그 무엇을 만끽하며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에 갇혀 지내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섬 생활이 매력적일 것이다.
도시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으며, 조금은 불편해도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자유로운 삶은 생각 속에만 맴돌고 있는 나의 삶이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진리를 알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