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잔 속에 비친 시인의 읊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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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힌지 댐 전경
골드 코스트에 살다 보니 다른 도시와 다르게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그것도 호주에서 가장 길다는 1번 고속도로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길이가 14,500km라고 한다. 호주를 한 바퀴 도는 1번 도로는 자동차 여행자에게는 익숙한 도로다. 필자가 호주를 여행할 때도 가장 많이 이용한 도로다. 텔레비전에서 1번 도로를 따라 호주 전역을 소개하는 도큐먼트를 아주 오래전에 본 기억도 있다.
호주에서 고속도로를 운전하면 관광지를 소개하는 이정표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정표는 생소한 호주 내륙을 찾은 여행객에게 큰 도움이 된다. 골드 코스트를 가로지르는 1번 도로에서도 서너 개의 이정표를 볼 수 있다. 그중에 가보지 않았던 관광지 표지판이 눈에 뜨인다. 힌지 댐(Hinze Dam)이다.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만 담아놓고 두어 달 보냈다.
오늘은 미루고 있었던 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멀지 않다.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평일 아침이다. 도로는 붐비지 않는다. 하늘에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골드 코스트 특유의 무더운 날씨다. 한가한 도로를 따라 산으로 접어든다. 얼마 운전하지 않아 힌지 댐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입구에 도착했다. 육중한 문은 활짝 열려있다. 여름에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개방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큼지막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경치 좋은 곳에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카페가 들어서 있는 건물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경치 좋은 곳이라 많이 찾는 것 같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카페가 있는 줄 몰랐다. 아침을 먹고 온 것이 조금은 후회된다.
사진 설명: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카페
무척 더운 날이다. 그래도 댐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댐에 조성한 산책로를 걷는다. 댐 길이가 1,850m라고 한다. 다행히 넓은 호수가 있어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이곳에는 산책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도 잘 조성해 놓았다.
그늘이 없는 댐 위를 걷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뜨인다. 그러나 걷는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더위 때문일 것이다. 웅장한 댐을 보며 발전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거대한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만 있을 뿐이다. 식수만 제공하는 댐인 것이다.
조금 걸으니, 이곳에 서식하는 뱀장어 사진과 함께 이런저런 설명이 쓰여 있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들고 있는 강태공 사진도 있다. 낚시가 허용되는 것이다. 댐에 대한 안내판도 보인다. 오래전 197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준공했다. 그 이후 2차례의 증축 공사를 거쳐 2011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난 댐이라고 한다.
그늘 한 점 없는 따가운 태양 아래 콘크리트 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양산이 아닌 평범한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이 뒤에서 걷는다. 우산이라도 쓰고 걸으면 조금 나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씩 지치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걸으면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뙤약볕에 돌아가야 할 것을 생각해 발걸음을 멈춘다. 앞에서 걷던 두 사람은 계속 걷는다.
댐이 만들어 놓은 호수를 바라본다. 저수량이 310,000ML라고 한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 주민 50만 명에게 식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보충 설명이 더 실감 나게 들린다.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한 바람이 풀어준다. 이러한 더위를 이겨내며 댐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잠시 숨을 돌리면서 사진도 찍은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세워둔 자동차에서 열기를 뿜는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환기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댐 아래에는 넓게 조성된 휴식 공간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와 고기 굽는 시설까지 갖춘 휴식 공간이다. 가족이 모여 하루 보내기 좋은 장소다. 그러나 조용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남녀가 잔디밭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주말에는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처에 있는 전망대에서 댐을 올려본다. 강수량이 많으면 물이 넘쳐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방류수로가 바로 앞에 있다. 물을 방류한다면 웬만한 폭포 이상의 장관이 펼쳐지기에 충분한 높이다. 위에서 내려 보던 풍경과 전혀 다른 댐의 모습이다.
사진 설명: 힌지 댐 방류수로
더위에 조금은 지쳐 있다. 더 이상 걷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 시원한 수돗물 한 잔 마신다. 조금 전에 가 보았던 댐에서 제공하는 물이다. 댐을 둘러보아서인지 물컵에는 조금 전에 걸었던 댐이 담겨있다.
흔히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의 편안함 속에는 타인의 땀과 심지어는 희생이 담겨있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며 지내는 나의 삶이다. 부끄럽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노래했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읊조림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진 설명: 힌지 댐에 조성한 휴식 공간(Picnic A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