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도서관에서 마주한 나의 모습
작성자 정보
- kang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5 조회
- 목록
본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모습, 삼일 빌딩이 보인다
문득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히 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막연히 고국산천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회귀 본능이 생긴다고 하던데, 빈말이 아니다. 추운 겨울과 복잡한 음력 설 연휴를 피해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춘삼월이다. 그러나 한국은 겨울 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꽃샘추위를 생각해 두툼한 옷도 챙겼다.
집을 나서 공항으로 향한다.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공항에서 수속을 끝냈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기내에서의 지루함과 불편함을 견뎌낸 끝에 비행기는 한국 땅에 닿았다. 싸늘한 날씨다. 골드 코스트에서는 지겹다고 투덜대던 무더움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간사한 인간이다.
명동 근처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를 둘러본다. 번잡한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골드 코스트에도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인파다. 명동 한복판에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중국어는 물론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낯선 언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거리 한편에서 찬송가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진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찬송가 듣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장소에서는 휴대용 확성기로 중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외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듯 쏟아내고 있다. 아무리 숭고한 가르침이나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선택권 없이 들어야 하는 이에게는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명동의 밤거리도 걸어본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점상이다. 각종 먹거리가 도로 중앙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호주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호떡을 샀다. 옛 추억을 떠올리는 군밤도 한 봉지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거리에는 먹을 것을 손에 들고 다니는 외국인으로 넘쳐난다. 한국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 외국인들 모습이 보기에 좋다. 방금 주차한 관광버스에서 외국인이 쏟아져 내린다. 먼 이국땅에서 소식으로만 접하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새삼 실감한다.
명동의 거리 음식, 중국어가 대부분이다
숙소는 남산과도 가깝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남산을 찾았다. 가파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등산로가 개설되었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 정상까지 가려면 1시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 조성된 등산로를 이용하면 20분에 갈 수 있다. 산책로는 가파른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금 걸으니 늘 따뜻한 골드 코스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울물이 녹지 않고 얼어 있는 모습이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겨울의 결정체다. 사진에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등산로에 설치된 계단은 가파르다. 나의 숨소리 또한 거칠어진다. 어느 산악인의 말이 떠오른다. 히말라야 정상을 오를 때 정상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정상을 바라보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1미터 앞만 보고 한 걸음씩 떼어 놓으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산책로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무리하지 않고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쉬지 않고 걸어 정상에 올랐다.
눈에 익은 정자가 보이는 남산 꼭대기에는 관광객이 많다. 남산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열쇠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걸어 놓았을 것이다. 문득 열쇠를 걸며 영원을 약속했던 사람 중에는 이미 남남이 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사 아닌가. 기독교에서는 내일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한다. 잘 모르긴 해도 불교에서는 인연 혹은 연기법에 따라 미래가 펼쳐진다고 하는 것 같다. 두 종교에서 말하는 공통점은 인간으로서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골드 코스트의 무더위를 잊게 한, 남산의 겨울 결정체
남산의 명물로 자리 잡은 사랑의 열쇠
관광객과 하나 되어 남산을 둘러본다.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생각보다 비싼 금액을 내고 올라가 본다. 서울시가 발 아래 펼쳐진다. 아주 오래전 살았던 동네를 눈짐작으로 가늠하며 서울의 달라진 모습을 둘러본다. 멀리 삼일빌딩이 보인다. 오래전 1970년도에는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31층짜리 빌딩이다. 지금은 수많은 고층 빌딩에 파묻혀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전망대에서 서성거리는데 남산 도서관이 보인다. 고등학생 시절 자주 찾았던 도서관이다.
추억이 있는 도서관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미 많이 걸었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등산로 주변의 성벽은 잘 수리해 놓았다. 올라오는 사람 중에는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나중에 올라 올 생각을 하니 내려가는 것이 조금은 후회된다. 하지만 이미 내디딘 발걸음이다.
도서관에 도착했다.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심지어 학생 시절 드나들던 입구도 그대로인 것 같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도서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던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이 난다. 옛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천상병 시인의 읊조림처럼, ‘아름다운 소풍’을 갈무리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추억이 서려 있는 남산 도서관, 옛 모습 그대로다
되돌아 올라갈 때는 또 다른 산책로를 택했다. 서울 대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남산에도 봄 내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내며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은 흘러도 청청함을 잃지 않는 남산의 주인이다.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려면 남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남산 정상에 다시 올라왔다. 점심시간은 이미 훌쩍 지났다. 아침에 올라왔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간다.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을 찾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5시간 이상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발걸음을 떼어 왔다. 아직은 걷는 데 자신이 있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자만심은 금물이다. 언젠가는 몇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오늘 찍었던 사진을 본다. 추억이 서려 있는 도서관 사진이 시선을 끈다. 고등학생 시절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우리 몸의 세포가 7년마다 바뀐다고 하니, 그 시절 소년의 육신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비단 몸뿐이랴. 생각도, 가치관도 그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당시에는 나의 모습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지금 간직하고 있는 몸 또한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내 생각과 주장도 알게 모르게 바뀌어 갈 것이다. 오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늘 내가 칠하는 감사의 색깔이 모여, 나의 남은 소풍 길을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주어진 하루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