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밤바다의 불꽃과 만두 한 점으로 채운 나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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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머물다간 자리,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고 있다. 현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연말 분위기를 돋우던 쇼핑센터도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웃들도 집 주변을 밝혀주던 색색의 꼬마전구들을 거두어들이며 연말연시의 떠들썩함에서 벗어나고 있다. 일 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연말연시를 되돌아본다. 이번 연말연시도 혼자서 보냈다. 하지만 혼자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모임과 행사가 이어진다. 내가 사는 50세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단지에서도 어김없이 파티가 열린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복장으로 장식한 이웃들과 음식을 나눈다. 음악에 재능 있는 이웃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운다. 흥에 넘쳐 춤을 추는 사람도 많다. 나도 술기운을 빌어 이웃과 어울려 한바탕 막춤을 추며 정을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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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에도 참석해 보았다. 일찌감치 찾아갔지만, 공원 근처에는 주차할 장소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공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야 했다. 행사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족 단위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손주들까지 3대가 함께 행사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보기에 좋다.


행사가 열리는 공원은 사람들로 빈자리 찾기가 어렵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어린이들이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 주위에는 어린이들을 유혹하는 가게가 많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솜사탕 가게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염소와 닭 등을 모아 놓은 이동식 작은 동물원이 눈길을 끈다. 무대에서는 수없이 들었던 크리스마스 노래를 어린이들이 부르고 있다. 부모들은 노래하는 아이들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하다.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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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을까, 골드 코스트에 정착해 최근에 알게 된 한국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두를 함께 만들어 먹자고 한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호주 사람도 초청했다. 혼자 지내는 남자다. 여러모로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보인다. 


함께 만두를 빚는다. 호주 사람도 만두를 빚어 쟁반에 올려놓는다. 만두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만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이웃과의 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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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에도 참석했다. 골드 코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해변에 일찍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근처에는 주차할 장소가 없다. 한참을 걸어야 할 만큼 멀리 떨어진 장소에 주차해야만 했다. 예전에 몇 번 걸었던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목적지로 향한다.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호흡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했기에 만끽할 수 있는 풍경과 하나가 된다.


불꽃놀이 장소는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려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자동차 통행을 금지한 광장에는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남녀노소로 넘쳐난다. 승려로 보이는 그룹이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춤을 추며 흥겨운 기분을 발산한다. 거리 한복판이 무대가 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원주민의 고유 악기 디저리두(Didgeridoo)를 원주민이 연주하며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덩치 좋은 남자가 농구공으로 묘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음식점과 장신구 가게에도 사람이 넘쳐난다.


드디어 새해를 알리는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다. 태평양 바다에 정박한 배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다. 바다에서 터뜨리는 불꽃놀이는 처음이다. 눈을 호사스럽게 하는 불로 만든 꽃들이 바다 위에 펼쳐진다. 해안에서는 서치라이트와 음악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수많은 불꽃이 환호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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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 참석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한국 뉴스에서 종종 듣는 ‘독거노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혼자 있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어서일까, 혼자 지내는 외로움이 괴로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건방진 말일까, 혼자 있으면 신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성자들이 고독을 찾아 나서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몸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삶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육체에 이끌려 가는 삶이 아닌 마음이 몸을 이끌어가는 삶을 꿈꾸어 본다. 쉽지 않을 것이다. 바울같이 예수님을 위해 삶을 바친 사도도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의 불일치에 탄식했을 정도이니. 


작은 것부터 마음이 원하는 삶을 몸에게 요구하며 일상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몸을 설득한다. 새해가 되었으니, 대청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청소를 끝냈다. 땀에 젖은 몸을 씻은 후 소파에 앉는다. 몸과 마음 모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새해의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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