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흘러가는 삶, 역마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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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숙소에서 맞이하는 일출

 

주위에서 ‘역마살이 끼었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딘가 찾아 나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하긴, 호주까지 와서 정착을 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역마살이 끼어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지는 몬트빌(Montville)로 정했다. 가볼 만한 곳이라는 입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갔었지만, 비바람이 몹시 불어 드라이브만 하고 돌아와야 했었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2박 3일로 숙소까지 예약했다. 평일과 다름없이 일어나 간단한 짐을 챙긴다. 두어 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여유롭게 핸들을 잡고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에 들어선다. 조금 더 운전해 들어가니 작은 동네(Landsborough)가 나온다. 동네에 들어서니 생각하지도 않은 박물관이 눈에 띈다. 잠시 쉬었다가 갈 생각으로 자동차를 주차한다.


박물관에는 동네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오래된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나무를 자르던 대형 톱을 비롯한 다양한 벌목 도구들이다. 벌목 사업이 한창일 때 형성된 동네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대다수의 마을이 한때 금광이나 벌목 붐을 타고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마을 역시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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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는 마차

 

박물관 구경으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산으로 접어드는 경사진 도로가 계속된다. 지난번에 잠시 들렀던 전망대가 있는 장소(Mary Cairncross Scenic Reserve)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올라선다. 지난번에는 비바람이 몹시 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글라스 하우스 마운틴(Glass House Mountain)의 멋진 풍경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평일임에도 주위에는 풍경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멀리 태평양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숙소다. 간단히 짐을 풀고 동네 구경에 나선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도로변에 설치된 큼지막한 물레방아다. 물레방아를 중심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유명한 관광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곳은 지대가 높아 멀리 태평양까지 시야가 트인 동네다. 하지만 경치 좋은 명당은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전망이 좋은 자리 역시 개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이 부담 없이 경치를 즐길 만한 공공장소가 없다.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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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몬트빌(Montville)을 상징하는 물레방아


태평양 경치를 포기하고 도로 건너편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곳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함께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옆으로는 물이 흐르는 정겨운 산책로다. 산책로를 걸으며 집을 벗어났기에 누릴 수 있는 낯선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하지만 산책로는 얼마 가지 않아 끊긴다. 또 다른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세상만사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 법 아닌가.


하루를 끝내기에는 조금 이르다. 갈 곳을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저수지(Baroon Pocket Dam)가 관광지로 소개되어 있다. 찾아가 본다. 흔치 않은 가파르게 경사진 도로를 운전해 내려가니 넓은 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식수를 제공하는 댐이라고 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조용히 혼자 낚시하는 사람, 그리고 수영복 차림으로 물가를 서성이는 두 명의 아가씨가 눈에 들어온다. 호주 특유의 한가한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다.

 


20251022_172315.jpg사진 설명: 마을에 식수를 제공하는 저수지(Baroon Pocket Dam)


숙소에 돌아오니 멀리 태평양이 보인다. 문득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일출 시각에 맞추어 알람을 켜놓고 잠자리에 든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밖으로 나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서서히 바다를 헤치고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얼마 만에 보는 해돋이인가.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다. 새로이 시작되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 아닐까. 흙을 헤치고 나오는 새싹과 어린 생명들이 아름다운 것처럼.


오늘은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등산로를 찾아 나선다. 국립공원에 있는 폭포(Kondalilla Falls)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한 바퀴 도는데 4.7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걸으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층계도 많다. 조심해서 발을 내디디며 계속 내려간다. 겨울이 없는 지방이라 주위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초목으로 무성하다. 큼직한 고사리들도 많이 보인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도 지천으로 널려있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풍경과 하나가 되어본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작은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천연 수영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며 땀을 식히고 있다. 젊은이들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 거침없이 물속으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지만, 발만 물에 적시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잠시 땀을 식힌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폭포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안내판에는 폭포 높이가 80m라고 적혀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숨결이 가빠지고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성인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집중한다. 등산로를 걷는 것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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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등산로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등산으로 피곤한 몸을 푹 쉬고 아침을 맞는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말로만 들었던 섬(Bribie Island)에 들려보기로 했다. 초목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산속 마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다. 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다리는 자동차로 붐빈다. 섬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단지도 많아 보인다.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에 주차하고 주위를 걷는다.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산에서 부는 바람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백사장을 차지하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손짓한다. 돌고래 서너 마리가 자맥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이사할 때마다 품었던 질문이다. 하지만 똑 부러진 답을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요즈음은 아예 답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생은 길가에 피어난 풀처럼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자유롭게 흘러가는 삶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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