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블루마운틴에서 만난 다윈의 발자취

작성자 정보

  • kang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20251008_112720.jpg

사진 설명: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에서 바라본 블루마운틴

 

호주에 이민 와서 처음 정착한 지역은 시드니다. 따라서 시드니에서 가까운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은 수도 없이 찾았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가야 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사랑했던 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골드 코스트에 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이후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블루마운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블루마운틴에 갈 일이 생겼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블루마운틴에 사는 부부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챙긴다. 블루마운틴 방문에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등산화도 챙겼다. 아무리 세심하게 여행 가방을 챙겨도 잊은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여행할 때 으레 그리하듯이.


블루마운틴까지 거리를 알아보니 1,000km가 조금 넘는다. 하루에 가기에는 무리다. 가는 길에 와용(Wyong)이라는 동네에서 이틀 정도 지내기로 했다.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와용에 살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났다. 정속 주행 장치(Cruise Control)를 작동시키고 한가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끝없이 펼쳐진 산야가 시야 가득 들어온다. 마음 또한 광활해지는 듯하다.


늦은 오후 와용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낸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노년에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지인 두세 명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시드니에 살면서 자주 다녔던 눈에 익은 고속도로를 달려 블루마운틴에 들어선다. 고도가 높아서일까, 바람이 싸늘하다. 하지만 신선한 산내음을 머금은 바람이다. 차창 밖으로는 생기 넘치는 푸른 숲과 들꽃들이 지나친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봄이 왔다는 것을 숨기지 못한다. 


반갑게 맞이하는 지인의 집에 도착했다. 앞뜰에는 봄을 맞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뒷마당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시드니를 떠나 시골에 깃든 삶이 부럽기까지 하다.


다음 날 아침 기대했던 하이킹을 떠난다. 지인이 안내한 장소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장소가 아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호젓한 산책로 입구에 도착하니 다윈의 산책로(Darwin's Walk)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다윈이 블루마운틴을 방문했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산책로를 걷는다.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나무판자로 조성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는 지면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다.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조다. 주변에는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리는 야생화가 많다. 집을 떠나야만 볼 수 있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발길을 자주 멈추게 된다. 저마다의 색과 모양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야생화들이다.

 

20251008_105615.jpg

사진 설명: 나무판자로 조성한 산책로에 피어 있는 야생화

 

걷는 중간에 작은 폭포를 만났다. 블루마운틴을 소개하는 화보에 나오는 웅장한 폭포는 아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폭포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어간다.


조금 더 들어가니 다윈의 시야(Charles Darwin View)라는 글이 동판에 적혀 있다. 다윈이 1836년 1월 17일에 쓴 일기장에서 발췌한 글이라고 한다. 거대한 벼랑의 가장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말로 시작되는 글이다. 다윈이 이곳에서 바라본 감명이 적혀 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산책로도 없었을 것이다. 이 깊은 골짜기까지 답사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윈의 위대한 연구는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발로 이루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파른 산책로가 시작된다.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다. 멀리 블루마운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폭포(Wentworth falls)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상단에 도착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가면 폭포를 올려 볼 수 있다. 힘겹게 폭포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사람이 한마디 한다. 내려가는 데는 5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올라올 때는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는 과장 섞인 푸념이다.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많은 사람은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돌아간다. 혼자 왔다면 무모하게 내려갔을 것이다.

 

20251008_114721.jpg

사진 설명: 폭포수가 떨어지는 낭떠러지 옆에 조성된 산책로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식당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한다. 산책로를 벗어나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근처에 ‘물의 계곡(Valley of the water)’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폭포수를 맞으며 암벽을 타는 사람들 사진과 함께 계곡을 소개하는 글이 게시되어 있다.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서는 젊은 남녀 서너 명이 등산 장비를 챙기고 있다. 나도 젊었다면 이곳에서 암벽을 등반하며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도 만족한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오늘 같은 산행도 하지 못할 것이다. 


산책을 끝내고 동네 길을 걸으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정원을 잘 가꾼 집들이 많다. 담장이 유난히 아름다운 집도 지나친다. 몇백 년은 더 버틸 것 같은 1905년에 건축했다는 자그마한 교회가 인상적이다. 사암(Sandstone)으로 지은 건물이다. 안내판에는 9시 30분에 예배를 드린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호주의 많은 교회처럼 교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인의 집 뒷마당에서 마지막 저녁을 보낸다.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와인 잔을 맞댄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하늘에는 달이 곱게 떠 있다.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수줍게 주위를 비춘다. 산골에서 바라보는 달은 유난히 아름답다.


반드시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난 것이 은퇴의 삶이다. 장자는 말하기를 인생은 잘 놀다 가는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산골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누린 여유와 기쁨이 인생의 ‘놀이’가 아닐까.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잘 놀았음에 감사한다.

 

20251008_111417.jpg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4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