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 속, 한용운의 ‘님’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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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무더위와 폭우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는 겨울이다. 작년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날씨다. 몸을 웅크리며 지내는 날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골드 코스트의 겨울이라고 해야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다. 하지만 지내면 지낼수록 추위를 더 타는 것 같다. 따뜻한 날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운 날씨이지만 요즈음 갈 곳이 생겼다. 지난주 우리 단지 안에 클럽하우스를 개장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다고 자랑이 대단한 클럽하우스다. 수영장을 비롯해 실내 골프장, 텐핀 볼링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요즈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찾아가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오후에 운동복을 입고 클럽하우스를 찾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바람도 많이 부는 스산한 날씨다. 클럽에 들어서니 아이들 소리가 많이 난다. 이웃 사람이 손을 흔들며 손주들이 방문했다며 눈웃음을 보낸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고 있다. 일요일을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온 아이들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먼저 실내 골프장을 찾았다. 이곳을 관리하기로 자원했기 때문이다. 관리라고 해야 특별한 것은 없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지 둘러보는 정도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 없다. 팔을 걷어붙이고 공을 쳐본다. 호주에 살면서 실내 골프장 사용은 처음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점수가 엉망이다. 한국에는 실내 골프장이 많다고 하던데, 호주에는 실내 골프장 찾기가 어렵다. 야외 골프장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담 없이 공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장소는 빠지지 않고 들리는 헬스장이다. 나이가 들면 다리 근육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한다. 화면에 펼쳐지는 스위스 전경이 마음에 든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끝날 때가 되었다. 옆자리로 옮겨 상체 운동을 시작한다.
다음 코스는 수영장이다. 실내 수영장이고, 온수 이기는 해도 오늘 같은 날씨에는 물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수영은 포기하고 스파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온몸을 맡긴다. 스파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어온다. 들어서기 무섭게 옷을 훌렁 벗어 재끼고는 물속에 뛰어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 밖에서 아이들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꾸밈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좋다.
스파를 끝내고 책을 읽기 위해 나만의 장소로 향한다. 골드 코스트 전경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야외 수영장이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독서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물소리 바람 소리도 듣기 좋다. 바람이 불지만 내가 앉아 있는 구석진 곳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도서관이 있으나 이곳에서 책을 읽는 이유다.
소파에 앉아 책을 꺼내는데 사람이 다가온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알고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이다. 친구가 방문해서 골프를 치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하느냐고 묻는다. 작동하는 법을 알려주고 잠시 지켜본다. 같이 온 친구는 실내 골프를 처음 해본다고 한다. 골프 실력이 보통 이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골프가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것을 실감한다.
골프장을 나와 아래층에 있는 텐핀 볼링장에 가 보았다. 사람이 없으면 잠시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볼링장은 떠들썩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즐기고 있다.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볼링은 포기하고 야외 수영장이 있는 소파로 돌아와 책을 꺼낸다. 오늘 가지고 온 책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이다.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익숙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같은 시를 읽어도 느끼는 감정은 매번 다르다. 몸과 마음이 환경과 세월 따라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훗날이 되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가치관도 지금의 나와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용운의 시 또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용운의 시에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주고받는 그 이상의 감정이 배어 있다. 저자가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가라는 것을 모르고 읽으면 사랑과 실연을 수없이 경험한 시인의 시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리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한용운이 애절하게 부르는 ‘님’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책을 접는다. 한국에 사는 지인과의 통화가 생각난다. 더위가 심해 ‘호캉스’로 더위를 피한다고 한다. 바캉스를 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호캉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렇다면 나의 생활을 호캉스의 삶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부러울 것 없는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는 작은 행복감에 젖어 든다.
저녁 식사 후에 뉴스를 접한다. 호주 공영방송에서는 중동의 아픔을 주요 뉴스로 전하고 있다. 가자 지구에서 한 끼를 해결하려고 빈 그릇을 들고 아우성치는 군중을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투하하는 식량을 구하려다 사망한 14살 된 아들을 잃었다는 어머니의 통곡하는 영상이 뇌리에 머문다. 이곳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는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호캉스의 삶, 마냥 즐겨도 되는 것일까. 이웃의 고통을 못 본 체해도 되는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인의 고통에 참여할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아니 타인의 고통에 참여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잠시 마음을 휘젓는다.
한용운이 일제강점기, 이웃의 고통을 보며 간절하게 ‘님’을 찾았던 이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