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민화로 한국을 그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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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정착해서 지낸 지 오래되었다. 전두환 정권 막바지 시절 이민 왔으니, 호주에서 지낸 세월이 한국에서 지낸 세월보다 길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호주 사람이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적인 것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귀소본능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동하지 않나 싶다. 음악이나 음식은 물론 심지어는 텔레비전도 한국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가 많다. 한국어로 발행되는 주간지도 자주 펼쳐 보게 된다. 


하루는 주간지를 보다가 ‘민화 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화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림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민화라는 그림이 보고 싶어진다. 민화 교실을 운영하는 남형숙 작가에게 연락해 보았다. 필자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며 흔쾌히 방문을 허락한다. 


민화 교실을 운영하는 곳은 이 층짜리 가정집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원장과 인사를 나눈다. 아래층 전체를 민화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벽에는 민화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민화 그리기에 열중하는 수강생들도 보인다. 미술관에 들어 온 듯한 분위기다. 특유의 물감 냄새도 주위를 맴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된 민화를 둘러본다. 민화(民畵)라는 이름처럼 민중의 시선으로 민중의 삶을 화폭에 담아 놓았다. 민화가 그려진 병풍도 눈길을 끈다. 민화가 들어간 장롱도 보인다. 자개로 꾸며진 자개장은 많이 보았으나 민화로 장식한 장은 이곳에서 처음 접한다. 민화가 조선 시대 민중의 삶에 깊이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한다.

 

민화를 감상하는데 팸플릿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한국에서 열렸던 송규태 선생님의 전시회 팸플릿이다. 남 원장의 스승이라고 한다. 연세가 많지만,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한다며 선생님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제자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이 부럽다. 필자 또한 선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제자가 있을까.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세상만사 뿌린 대로 거두는 것 아닌가.


붓으로 세심하게 보듬어 완성한 다양한 작품을 본다. 화려함을 뽐내는 다양한 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꽃들을 찾아온 나비, 벌 그리고 잠자리 등은 화폭에서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림을 자세히 보니 재능만 있다고 그려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온 정성을 다해 붓을 움직인 집중력이 보인다. 이러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며 도를 닦듯이.


열심히 붓을 놀리는 수강생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민화를 그린 지 3년 되었다고 한다. 시작한 이유는 초보자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성 들여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붓끝에 정직함과 성실함이 묻어난다. 완성되어 가는 작품을 보니 첫눈에 반할 정도로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선생님의 조언을 받으며 그림을 완성해 가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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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민화의 매력에 빠져 공부했다고 한다. 호주에 살면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며 민화 보급에 여러모로 힘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호주에 민화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민화 교실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민화전에 수강생들을 참여하도록 하여 수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는 호주에서 열리는 미술 공모전에도 참여할 생각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다.


민화 작가로서의 고집(?)도 대단하다. 화학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통 한지부터 화학 재료를 넣지 않은 천연물감을 사용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재료를 한국에서 가져오기에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한국의 전통 민화를 전수하려는 원장의 노력이 돋보인다. 

명함을 주고받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명함과 다르다. 오리와 꿩이 오손도손 물가와 나무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민화가 그려져 있는 명함이다. 사단법인 한국민화협회 호주지부라는 타이틀도 보인다.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민화를 가르치며 이민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잠시 차를 마시며 분위기에 젖어 든다. 음악이 들린다. 팝송이다. 호주라는 이국에서 팝송을 들으며 민화를 본다. 팝송과 민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하모니를 이룬다. 문득 호주는 다문화 국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호주는 미국과 다르다.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국가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그들의 모국어와 문화를 간직하며 지내는 것을 장려한다. 다양한 문화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색이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대다수가 추구하는 욕망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틀에 갇혀 지내야만 편안함을 느끼는 현대인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유일한 나의 삶을 독특한 나의 색으로 채색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상대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삶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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