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길 잃어도 괜찮아, 나만의 산책이 주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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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삶은 누구의 간섭도 없는 나만의 생활이다. 속된 표현으로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며 지내는 삶이다. 하루하루가 온전히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 그렇다고 계획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하는 나름의 일정은 있다. 한 달에 두어 번 낯선 장소를 찾아 떠나는 것도 은퇴 생활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몸이 근질거린다. 낯선 곳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증상이다. 해변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장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클리블랜드(Cleveland)라는 해안을 끼고 있는 동네가 시선을 끈다. 동네 이름은 들었지만 가 본 적은 없다. 집에서 멀지 않다. 하루 보내기에 좋은 장소다. 


출근 시간을 피해 늦은 아침 집을 나선다. 조금은 한가한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클리블랜드에 도착했다. 제법 큰 동네다. 동네 중심가를 지나 바닷가로 운전한다. 넓은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은 한가하다. 평일이라 찾는 사람이 적어서일 것이다. 주차장 규모로 보아 여름 성수기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 해안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는다. 아담하고 작은 백사장이 나온다.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와 함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하루를 즐기는 엄마가 보인다. 백사장 끝자락에서는 중년의 남자가 수영복 차림으로 몸을 풀고 있다.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골드 코스트가 더운 지방이긴 해도 나 같은 사람은 바다에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겨울이다. 호주 사람들은 추위에 강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자그마한 백사장을 지나니 또 다른 백사장이 나온다. 이곳의 풍경도 먼저 해변과 대동소이하다. 조금 더 걸으니, 백사장이 또 나온다. 하지만 이곳 분위기는 전혀 다른 해변이다. 많은 개가 백사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반려견을 위한 해변인 것이다. 이제는 개도 사람과 거의 동급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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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위한 백사장을 마지막으로 산책로는 끝난다. 백사장 끝자락부터는 저택들이 해변을 차지하고 있다. 도로 건너편도 마찬가지다. 수로를 따라 들어온 바다에는 저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바다에는 큼지막한 요트부터 작은 보트까지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흔히 보기 어려운 거대한 조각품을 앞마당에 전시한 집도 보인다. 돈 많은 사람의 휴양지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마치고 자동차에 오른다. 생소한 동네를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운전하는데 관광지(Cleveland Point) 표지판이 보인다. 운전대를 돌려 찾아갔다. 많이 알려진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등대다. 설명서를 보니 1866년에 지은 것이라 한다. 예전에는 작은 항구로서 많은 역할을 했던 장소다. 


관광객 대부분은 등대를 사진에 담는다.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걷는다. 한국말도 들린다. 요즈음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다반사다.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한국말이 들리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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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근처까지 걸어가니 큼지막한 사륜구동차가 주차해 있다. 자동차 앞에는 나이 많은 부부와 젊은 부부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동차 번호판을 보니 서호주(Western Australia)에서 온 사람들이다. 호주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자동차 여행을 한 것이다. 말을 걸어본다. 퍼스(Perth) 북쪽에 있는 동네에서 왔다고 한다. 말투에는 호주를 횡단했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이곳저곳 관광하면서 6,000km 이상을 운전해서 왔다고 한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특별한 인생 경험 중 하나인 원주민과 오래 지냈던 동네(Morawa)를 이야기하니 놀라는 표정이다. 자기 동네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바닷가재(Lobster)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동네(Dongara)에 대해 내가 잘 아는 것에 놀라는 표정이다. 관광객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낯선 오지에 있는 동네를 서로 알고 있다는 동질감이 생겨난다. 친밀감을 느끼며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클리블랜드 포인트를 떠나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한다. 바다를 만나면 바다를 보고 주택가를 만나면 동네를 둘러보며 마음 편하게 운전한다. 문득 계획 없이 유럽 여행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가는곳도 모르는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오가면서 관광(?)하기도 했다. 안내원을 따라 관광지를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고 회상한다.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어버렸을 때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바다로 향하는 도로를 만났다. 들어가 본다. 도로 끝까지 들어가니 식당 겸 술집(Redland Bay Hotel)이 나온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사람들로 북적인다. 맥주로 목을 축이고 늦은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식당 뒤뜰을 보니 바닷가로 난 작은 길이 있다. 내려가 보았다. 생각지도 않게 산책로가 보인다.


산책로는 해안을 끼고 계속된다. 울창한 숲도 지나고, 해안도 지난다. 이름 모를 꽃을 보며 잠시 멈추기도 한다. 많이 걸었다. 그러나 산책로는 계속된다. 중간에 돌아설 수밖에 없다. 우연히 동네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좋은 산책로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도착했다. 기분 좋은 피곤함에 젖어 든다.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 아닐까.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인터넷에는 은퇴 생활을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강의도 많다.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행복이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타인과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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