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날씨가 계속 맑으면 사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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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공원 전망대에서 안개 사이로 잠시 볼 수 있었던 풍경 

 

요즈음 파란 하늘 보기가 어렵다. 비구름이 오락가락하며 자주 비가 내린다. 한국 장마가 연상되는 날씨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덩달아 많아진다. 스포츠와 여행 프로그램을 주로 보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며칠 전까지는 한국 뉴스도 자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떠들썩한 탄핵 정국이었기 때문이다.  


즐겨보는 여행 방송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공영방송이기에 화면이 좋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도 마음에 든다. 얼마 전에 몬트빌(Montville)이라는 동네에 대한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몬트빌은 선샤인 코스트에서 가까운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내륙에 있는 동네다. 영상에 나온 산책로를 걷고 싶다. 폭포도 마음에 든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그러나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하늘에는 비구름이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벼르고 있던 몬트빌에 가기로 한다. 은퇴한 삶, 직장에 매이지 않았기에 주어진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삶이다. 하루하루의 주인이 되어 즉흥적으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계획 없이 지낸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겠지만.


목적지까지는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깝지 않은 동네다.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조금 빠듯할 수도 있다. 숙박할 곳을 알아본다. 숙박료가 꽤 비싸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중에 저렴하고 몸과 마음을 편히 쉴만한 숙소를 급하게 예약했다. 숙소는 몬트빌 가기 전에 있는 말레니(Maleny)라는 동네다. 신용카드에서 숙박비가 지급된 것을 확인하고 집을 떠난다.  


선샤인 코스트를 향해 1번 도로를 타고 달린다.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브리즈번 근처에서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한다. 브리즈번에서 올림픽까지 열리면 지금보다 더 복잡한 도시가 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복잡한 도시 생활을 견뎌야 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숲이 우거진 국도에 들어선다. 관광지로 유명한 글라스 하우스 마운틴(Glass House Mountain)을 지나친다. 도로는 계속 산을 향해 뻗어 있다. 고산에 올라갔을 때처럼 귀가 먹먹해 진다. 비는 오락가락하기를 계속하지만, 다행히 소나기는 내리지 않는다.


숙소가 있는 말레니(Maleny)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예약도 확인할 겸 숙소에 들렀다. 예상한 대로 방은 준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이름으로 예약된 손님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늦어질 수도 있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라고 한다.


예약한 숙소에서 나와 동네를 둘러본다. 우산을 펴기도, 그렇다고 비를 맞기도 부담되는 날씨다. 어중간하게 흩날리는 비에 옷을 적시며 거리를 걷는다. 작은 동네가 마음에 든다. 가게가 모여있는 동네 중심가에 들어섰다. 집시풍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건과 옷을 파는 가게가 많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나름대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게들 틈에 자그마한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지나칠 수가 없다. 들어서기 무섭게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자원봉사로 일한다고 한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 묵을 것이라고 하니 더욱 반가워한다. 지도 한 장 꺼내 보이며 자상한 설명이 시작된다. 할머니가 형광펜으로 표시한 지도 한 장을 들고나온다. 호주 시골 동네의 친절함이 몸에 밴 할머니다.  


도로 건너편을 보니 장신구를 비롯해 그림과 사진 작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평소에 좋아하는 사진이 전시된 공간에 발걸음을 멈춘다. 유난히 시선을 끄는 작품이 보인다. 지평선 끝에 보이는 산들을 배경으로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 너른 초원 한복판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외롭게 서 있는 사진이다. 독특한 울림이 있다. 구매하고 싶으나 가격표에 동그라미가 너무 많다.


점심시간이다. 식사하며 인터넷을 열어본다. 새로 배달된 이메일을 열어본다. 아침에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가끔 이러한 착오가 생기는데 입금된 금액은 환불해 주겠다는 이메일이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삶이 더 싱싱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삶이 무미건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숙소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할머니가 추천한 관광지(Mary Cairncross Scenic Reserve)를 찾아 나선다. 자동차에 올랐다. 동네를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았는데 빗줄기가 굵어지는가 싶더니 소나기가 퍼붓는다. 안개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도록 끼어있다. 도로변에 전망대 표지판을 보고 잠시 주차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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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안개가 시야를 가린 전망대

 

 

목적지에 도착했다. 현대식 전시관도 갖추고 있는 공원이다. 숲속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다. 비가 오지만 우산을 쓰면 걸을 만하다. 울창한 나무가 비를 어느 정도 막아 주기도 한다. 냇물이 흐르는 곳에 잠시 머문다.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맑은 물이다. 거대한 고목이 쓰러져 있기도 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거대한 검튜리가 시선을 끌기도 한다. 

 

산책이 거의 끝날 즈음에 종아리를 보니 거머리가 붙어 있다. 산책을 끝낸 몇몇 사람도 거머리가 있을 것을 염려해 종아리를 살핀다. 축축한 날씨 때문에 거머리가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  


이곳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올라가 본다. 안개 때문에 전망대에는 사람이 없다. 하늘이 나를 위해 잠깐 서비스하는 것일까. 바람에 쓸려가는 구름과 안개 사이로 멋진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잠시 지나가는 경치이기에 더 멋지게 보이는 것 같다. 


할머니가 추천한 폭포에 가는 것은 생략하고 목적지 몬트빌로 향한다. 비가 오는 것도 있지만 거머리 생각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전망대가 보여 잠시 멈추었다. 거세진 비와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몬트빌에 도착했으나 비 때문에 관광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지대에 있는 동네라 기후 변화가 심한 것 같다. 


평소에 좋아하던 ‘날씨가 계속 맑으면 사막이 된다.’는 스페인 속담이 떠오른다. 몬트빌이라는 동네가 한국의 방송사가 취재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유는 오늘과 같은 궂은 날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루 묵을 생각은 포기하고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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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산책로에서 만난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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