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바닷가를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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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지난 며칠은 태풍(Cyclone Alfred)이 온다는 소식에 동네가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에서는 태풍에 관한 보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몇십 년 만에 오는 강력한 태풍이라며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피해당한 동네와 주민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방영했다. 이웃들과는 태풍 피해가 없었냐고 묻는 것이 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카톡으로 안부를 걱정한다.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지낼 수밖에 없는 며칠이었다.
많은 걱정을 했는데 피해 없이 태풍의 소용돌이를 벗어났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는 침수와 정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허리까지 물이 들어온 집에서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주민도 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를 벗어났다는 안도와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는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본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구름을 비웃듯 파란 하늘이 보이는 아침이다. 궂은 날씨 후에 보아서일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색다르게 보인다. 지난 며칠 동안 골드 코스트 해변은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를 맞으며 마이크 들고 숨가쁘게 소식을 전하던 기자와 산더미같은 파도가 해안을 덮치는 영상이 떠오른다. 역사의 현장이라고 하던가, 해변을 보고 싶다. 자동차 시동을 건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해변으로 향한다. 경험에 의하면 서퍼스 파라다이스 주변에서는 주차장 찾기가 어렵다. 주차하기가 조금은 수월한 시월드(Sea World) 쪽으로 향한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해변 산책로를 따라 마냥 걸을 생각이다.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하루 종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시월드가 멀리 보이는 공원에 주차했다. 넓은 잔디밭에는 커다란 나무 서너 그루가 뿌리째 뽑혀 누워있다. 이곳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닷가 산책로에 오르니 바람이 많이 분다. 아직도 태풍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바람이다. 산책로에서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폐쇄되어 있다. 경찰이 카트를 타고 산책로를 돌아보고 있다. 해변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진 설명: 피해입은 해변가 산책로를 순찰하는 경찰
산책로를 걷는다. 햇볕이 따갑다. 그러나 선탠로션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태양에 몸을 맡겨도 괜찮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1980년 중반, 한국을 떠날 때까지는 선탠로션을 바른 기억이 없다. 해변에서 지내고 난 후에는 따끔거리는 팔과 등에서 시커멓게 탄 피부 껍질을 벗겨내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요즈음은 한국에서도 선탠로션은 필수품이 되어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책로 통행을 금지한다. 도로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차도로 걸어야 한다. 자동차 소음과 매연 속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파도 소리와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었는데. 계획을 바꾸어 자동차를 타기로 한다. 많이 걸어 왔는데 아쉽다. 왔던 길을 되돌아 주차장으로 향한다. 세상살이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향해 운전한다. 막상 운전하며 가다 보니 꽤 먼 거리다. 자동차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까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일까, 도로변에 주차할 곳이 가끔 보인다. 오늘 하루는 걷기로 작정한 날이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적당한 자리에 주차했다. 지금부터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산책로 중간에 해변으로 사람이 들어간 흔적이 있어 발걸음을 옮겼다. 해변을 보니 태풍이 모래를 쓸어가 낭떠러지를 만들어 놓았다. 내 키의 2~3배는 되어 보이는 내려갈 수 없는 가파른 모래 둔덕이다. 큰 나무도 한 그루 쓰러져 있다. 모래가 쓸려 가면서 나무가 설 곳이 없어 뿌리째 뽑힌 것이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도착했다. 해변에 인명구조 대원이 보인다. 폭풍 피해가 있지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유명한 해변이기에 급하게 주위를 정리한 후 개방했을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골드 코스트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증명하듯 해안가를 거니는 관광객은 평소와 다름없이 많다. 관광객들은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곳에도 조금 전에 보았던 태풍이 만들어낸 모래 절벽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공사를 하느라 출입을 통제하는 장소도 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태풍의 위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80퍼센트의 모래가 태풍에 실려 나갔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지역 정치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백사장에 있는 중장비들도 눈길을 끈다. 평소에 듬직하게 보았던 중장비들이다. 그러나 황량한 해변에 있는 모습은 초라하게 보인다.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간 해변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설명: 태풍이 지나간 백사장을 복구하는 장비들
인간의 기술과 능력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큰 홍수로 피해를 보고, 미국에서는 토네이도가 덮쳐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한국에서도 산불로 인해 생명을 잃기까지 하면서 피해가 심하다고 한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오래되었다. 인간만을 생각하며 자연을 파괴하는 욕심이 만들어낸 재해가 아닐까.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갓 티끌과 같은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때문에 유명해진 말이다.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는 고대 그리스 격언이다. 현대인으로서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해야 할 격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자연과 함께 지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구는 모든 창조물과 함께 누려야 하는 오직 하나뿐인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