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의 올가미를 벗어난 삶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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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 방송에서 보았던 뉴스가 떠오른다.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는 소식이다. 가까운 미래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보도도 이어진다. 이러한 뉴스를 들으면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뉴스에서 우려하는 70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호주에도 고령화사회에 대한 우려는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우려가 크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호주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으로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금을 받으면서 정부에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젊은 시절 세금을 냈으니, 정부가 노년 생활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50세 이상만 거주할 수 있는 단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은퇴 후 노년을 즐기기 위해 이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단지가 호주에는 많다. 특히 따뜻한 기후로 노년을 보내기 좋은 퀸즐랜드(Queensland)주에는 이러한 단지가 우후죽순 생기는 추세다. 필자가 거주하는 단지를 개발한 회사도 많은 곳에 새로운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아마도 마케팅의 일환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단지에 사는 사람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팜우즈(Palmwoods)라는 동네에서 열린다고 한다. 퀸즐랜드의 유명한 휴양지(Sunshine Coast)에서 가까운 동네다. 참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바다 구경도 하고 다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기 종목은 수영, 당구, 스크린 골프, 볼링, 테니스 등 다양하다.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한 끝에 탁구를 택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탁구를 했던가, 학창 시절에 친 것이 마지막이니 50년은 족히 넘었다.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려 탁구를 다시 시작해 본다. 단지에 있는 탁구장에서 이웃과 함께 경기를 해보기도 한다. 옛날 실력이 조금씩 되살아 난다.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긴다.
스포츠 대회가 열리는 날(9월 11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경기장 근처에 숙소를 예약하고 하루 일찍 집을 떠난다. 따뜻한 북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은 봄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저 멀리 산 위에 전망대처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고속도로변에 전망대(Wild Horse Mt Lookout)를 가리키는 이정표도 있다. 숙소에는 오후가 되어야 짐을 풀 수 있다. 시간은 넉넉하다.
전망대 쪽으로 차를 돌렸다. 조림지가 형성되어 있는 좁은 도로에 조금 들어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부터는 걸어서 전망대까지 가야 한다. 전망대까지 700m라고 입구에 적혀있다. 걷기에 좋은 날씨다. 하지만 오르막 경사가 심하다.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숨을 가쁘게 내쉬어야 할 정도다. 젊은 시절이라면 식은 죽 먹기로 올라왔을 것이다.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360도 모든 풍광이 발밑에 펼쳐진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Glasshouse Mountains)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다. 특히 우뚝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시선을 끈다. 조금 전에 지나쳤던 고속도로에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 달리고 있다. 시야가 트인 곳에 올라서니 마음까지 시원하다. 종종 낯선 곳을 찾아 여행하는 이유다.
전망대를 떠나 바닷가 동네인 물루라바(Mooloolaba)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주변을 걷는다. 열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잠수복을 입고 있다. 바로 옆에는 잠수부들을 태우고 스쿠버 다이빙 장소로 갈 보트가 정박해 있다. 바다에 뛰어들 마음에 설레서일까, 어느 정도 상기해 있는 모습들이다.
근처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 보았다. 기념비가 보인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위한 기념비가 아니다. 해상 안전을 담당했던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많은 손길이 함께 하고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물루라바는 관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네다. 해안 쪽으로는 리조트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캠핑장에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캐러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백사장은 바다를 즐기는 사람으로 붐빈다. 관광지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경기장으로 향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현란하게 꾸민 옷을 입은 할머니들이 선수들의 입장에 환호를 보낸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복식 탁구에 참여했는데 처음 두 게임은 아슬하게 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5개의 게임은 전승했다. 결과가 나쁘지 않다.
탁구를 끝내고 테니스 경기를 관람한다.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니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는 경기를 보는 기분이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물론 공의 속도도 무척 느리다. 동호회에 참석해 테니스를 즐겼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치는 사람들보다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경기에 임하면 몸이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 팀을 응원하기도 하면서 다른 경기들을 구경한다. 과장된 응원과 과장된 박수를 받으며 선수들은 열심히 경기에 참여한다. 선수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의 실력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응원과 박수 세례에 즐거워한다. 이긴 사람도, 패배한 사람도 얼굴에는 웃음이 넘쳐흐른다.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주름살 위로 퍼져 나간다.
승패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주어진 삶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잘 물든 단풍은 봄에 핀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잘 물들어 가고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