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버린 마운틴 너머에 있는 마을이 선사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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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코스트에서 가볼 만한 산을 꼽으라면 탬버린 마운틴(Tamborine Mountain)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탬버린 마운틴은 자주 찾는 편이다. 집에서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방문객이 오면 데리고 가야 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탬버린 마운틴을 넘어서 가 본 적이 없다.
가끔 탬버린 마운틴 너머에는 어떠한 동네가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오늘은 컴퓨터 앞에 앉아 지도를 보며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보우디저트(Beaudesert)라는 동네가 눈에 뜨인다. 요즈음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인공지능에게 마을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공지능은 경관 좋은 곳에 있는 매력적인 시골 마을이라고 소개한다. 매력적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가보기로 했다.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은퇴한 삶에 감사하면서.
자동차로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내륙으로 뻗은 국도에 들어선다. 도로는 2차선이지만 제한 속도는 고속도로와 다름없이 시속 100km이다. 다행히 따라오는 차량이 없다. 천천히 운전하며 시골 풍경을 즐긴다. 작은 구릉들이 차창 밖으로 지나친다. 한가하게 초목에서 풀을 뜯는 소들도 보인다. 여행하면서 수없이 보아온 호주 특유의 시골 풍경이다.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난 해방감이 밀려온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은퇴자를 위한 대규모 주택단지도 있다. 시골에 있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라고 짐작했는데 큰 동네다. 주유소도 서너 개가 있다. 특이한 점은 휘발유 가격이 대도시 골드 코스트보다 많이 저렴하다. 지방으로 가면 비쌀 것 같아 미리 휘발유를 넣고 온 것이 후회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휘발유 가격이다.
동네 이름만 입력하고 떠났는데 내비게이션은 동네 중심가에 있는 큼지막한 공원(Jubilee Park)으로 안내한다. 주위를 한가하게 걸어본다. 어린이 놀이터가 보인다. 공원에는 일요일이라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가 많다.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를 아빠가 뒤에서 따라가며 가르치기도 한다. 가족들이 모여 하루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낯선 동네에 왔다. 평소에 하듯이 관광안내소에 들리기로 했다. 관광 안내소를 입력하고 갔는데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장소로 안내한다. 철도 공원(Railway Park)이다. 계획 없이 맞닥뜨린 공원이지만, 안내판을 읽기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영국 여왕이 1927년 브리즈번에서 이곳까지 기차를 타고 방문했다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를 자처하는 호주에서는 큰 행사였을 것이다. 따라서 여왕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갈만한 곳을 알아본다. 마음을 끄는 장소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호수(Wayralong Dam)다. 자동차 시동을 건다. 동네 끝자락에 있는 교차로에 들어서는데 관광안내소 이정표가 보인다. 내비게이션이 찾지 못했던 관광 안내소다. 호수로 가는 도로를 벗어나 안내소 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관광안내소에 도착하니 직원이 반가이 맞이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팸플릿을 받는다. 안내소에는 지역 주민들이 그린 미술과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꿀을 비롯해 몇 가지 제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평소에 잘 먹는 꿀 한 통을 사고 안내소를 떠난다. 시골에서 채취한 꿀이라 품질이 좋을 것이다.
호수로 향한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내비게이션이 오른쪽으로 난 작은 비포장도로로 들어가라고 안내한다. 그것도 2km나 되는 비포장도로다. 입구에는 아무런 안내판도 없다. 이틀 전에 비포장도로를 운전해서 지저분해진 자동차를 세차했다. 또다시 비포장도로를 2킬로나 운전하고 싶지 않다. 관광지로 소개된 호수로 가는 도로가 이렇게 허술하다니. 조금 실망하고 되돌아간다. 살다 보면 예상치 않은 일을 겪는 것은 다반사가 아닌가.
아쉬운 마음으로 왔던 도로를 되돌아 가는데 큼지막한 이정표가 보인다. 호수로 안내하는 이정표다. 갈 때는 내비게이션만 보며 운전하느라 이정표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지나쳤던 것이다. 호수로 가는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다. 왼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운전한다. 도로 끝자락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는 생각보다 큰 공원이다.
호수 주위를 걷는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공해에 찌들지 않은 바람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신다. 주변에는 낚시하는 그룹이 많다. 그러나 물고기를 낚기보다는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보트 두 척이 한가히 호수 위를 맴돈다. 방금 도착한 젊은 남녀는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는 공원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다. 휴일을 맞은 호주 사람들의 일상을 본다.
호수 주위를 산책하니 배가 출출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다. 소를 키우는 시골에 왔으니, 소고기가 점심 메뉴로 괜찮을 것이다. 동네 중심가로 돌아와 스테이크라고 쓰인 식당에 들어선다. 손님이 많은 편이다. 메뉴를 보니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스테이크는 내가 주문한대로 약간 덜 익혀 나왔다. 연하고 맛이 좋다. 소를 키우는 시골에서 먹는 소고기 맛은 확실히 각별하다.
식사를 끝내고 가까이에 있는 공원(Bicentennial Park)을 소화도 시킬 겸 찾아갔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는데, 박쥐에 대한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장황하다. 주위에 있는 큰 나무를 보니 예상치 못한 박쥐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박쥐를 사진에 담으면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나무 열매처럼 가지에 매달려 사는 그들만의 삶을 바라본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면서.
낯선 동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한다. 한가한 시골 도로를 운전하며 보우디저트라는 동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매력적인 동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왔다면 호수를 거닐고, 박쥐들을 사진에 담고, 맛있는 스테이크까지 먹었으니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만사 좋고 나쁨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행복도 불행도 결국은 내가 만든다는 어느 종교 지도자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