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낯선 소도시 입스위치(Ipswich)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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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코스트에 이사 온 이후 입스위치(Ipswich)라는 도시 이름을 자주 듣는다. 자주 다니는 고속도로 이정표에서 보기도 하지만,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언급되기 때문이다. 입스위치는 인구 26만 명 정도 되는 작지 않은 도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 필자가 싫어하는 정치인(Pauline Hanson)을 배출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까운 동네이기에 찾아보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다. 느긋하게 준비한 후에 자동차에 오른다. 내비게이션에 도시 이름을 입력하니 입스위치 자연센터(Ipswich Nature Centre)라는 지명이 보인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자연센터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어느덧 내륙으로 들어서는 도로에 접어들었다. 트럭이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다. 


자연센터에 도착했다. 숲이 우거진 식물원을 예상했으나 작은 동물원을 연상시키는 장소다. 나무 위에는 박쥐들이 떼를 지어 매달려 있다. 필자는 박쥐로 알고 있지만, 정식 명칭은 날 여우(flying fox)라고 한다. 박쥐보다 크고, 식성도 곤충을 먹는 박쥐와는 달리 과일 등을 먹는다. 심지어 생김새도 다르다고 하지만,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은 박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날 여우 특유의 냄새가 주위를 진동한다. 박쥐와 달리 낮에도 활동하기에 주위는 시끄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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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센터에 들어서니 호주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호주를 대표하는 캥거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호주에서만 서식한다는 웜뱃(Wombat)도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뱀과 파충류 등도 유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동굴 같은 특이한 전시장도 있다. 야행성 동물을 볼 수 있도록 마련한 장소다. 이곳에서 시선을 끄는 동물은 빌비(Bilby)라는 쥐와 생김새가 비슷한 동물이다. 귀가 유난히 큰 빌비가 낮을 밤으로 착각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센터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찾는 장소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동물을 구경하며 걷는다. 야외 수업을 하는 것이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엄마도 있다. 동양인 여성 서너 명이 중국어를 주고받으며 호주 동물에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냇물도 흐르고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다.  


자연센터를 나와 근처에 있는 식물원을 찾았다. 네리마 정원(Nerima Gardens)이라는 일본식 정원이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니 입구부터가 허술하다. 들어가 보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산책로도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많다. 공사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태풍으로 피해가 있었다는 짐작을 해본다. 


네리마 정원을 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평일이지만 한낮을 즐기는 사람으로 붐빈다. 소도시 특유의 여유가 넘쳐 나는 카페다.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들도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들 모임은 보이지 않는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의 모임은 자주 눈에 띄는데, 할아버지들의 모임은 왜 보기 어려울까.


새로운 동네에 왔는데 중심가를 지나칠 수 없다. 시내 중심가를 찾았다. 큰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에 좋다. 광장 한복판에 있는 큼지막한 현대식 건물에 도서관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광장 중심에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음에 드는 도시다.


점심시간이다. 무엇을 먹을까. 호주를 여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지역 특유의 맛집을 찾기 어렵다. 오지를 여행하더라도 햄버거를 비롯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호주 음식이 대부분이다. 걷다 보니 부담 없이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김밥집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 개업한 깔끔한 식당이다. 손님이 많은 편이다. 식당에서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는 큰 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미술관을 찾았다.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지만, 미술관 특유의 차분함과 조용함을 무척 좋아한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전시된 작품은 너른 마루와 어우러져 더욱 돋보인다. 같은 작품이라도 전시된 공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소음과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의 삶과 새소리와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 삶의 모습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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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스위치에는 작은 강(Bremer River)이 흐르고 있다. 강을 건너는 큼지막한 철제 다리도 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인도다. 천천히 다리를 걷는다. 다리 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강물에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잠시 멈추어 강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다리 건너편 경치 좋은 곳에는 카페와 식당이 줄지어 있다. 


강변에 있는 쇼핑센터도 둘러본다.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가게에 들러 평소에 생각했던 물품을 구입했다. 친절함이 몸에 밴 직원의 미소가 마음에 든다. 싫어하는 정치인이 배출되었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좋고 나쁨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습관에 젖어있는 나를 본다.


평소에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기에도 그려진 음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립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하나라고 하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양극의 조화라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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