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진 자유기고가

사는 것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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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50세가 넘은 사람이 주거하는 단지에서 지낸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실버타운'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옆집에는 남편을 여의고 이사 온 할머니가 산다. 금실이 좋아 보이는 앞집에 사는 부부와는 심심찮게 마주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인생 황혼기를 맞아 마음과 몸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단지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퇴직한 삶이라 시간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외로워서일까, 심심치 않게 이런저런 모임을 갖는다. 단지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모여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옆집 할머니가 남편 기일이라며 이웃을 부른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웃은 생일 파티를 이웃과 함께 나누기도 한다. 오래전 유행하던 음악을 배경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춤을 추며 늦게까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웃집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을 때도 있다. 이야기 나눈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이유다.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음식과 맥주 혹은 포도주를 가지고 참석한다. 지금은 익숙해진 호주식 모임이다. 따라서 이웃을 부른 집에 큰 부담은 없다. 장소만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밤늦게까지 떠들썩하게 지낸 적이 두어 번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모임을 가질 때마다 호주 사람들은 말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른다. 이곳에 정착할 때까지 캐러밴을 가지고 호주 전역을 여행했던 이웃은 오지에서 겪었던 이야기가 장황하다. 기차로 호주 대륙 여행을 끝내고 얼마 전에 돌아온 부부도 한마디 거든다. 몇 달 후에 유람선 여행을 떠나는 할머니도 대화에 빠질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노년을 어떻게 즐겨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퀸즐랜드에서 선거가 있었기에 정치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모임에서 꺼린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호주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당을 찍어야 한다며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온 낙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임신 후 몇 주가 지나면 사람의 모습이 형성되기 때문에 낙태는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할머니 그러나 사람에 따라 건강이나 개인적 사정이 있기에 허가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나도 한마디 거든다. 낙태에 찬성하지 않지만, 법으로 규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인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정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과 다른 점이 눈에 뜨인다. 정치인 개인의 학벌이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사람들 틈에서 정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이재명과 윤석열 혹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여당이나 야당이 내세우는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도 이웃이 초저녁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다. 음식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없다. 평소처럼 김밥 한 접시를 사 들고 방문한다. 물론 내가 마실 포도주도 잊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모이는 모임이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집을 팔고 얌바(Yamba)라는 동네로 이사 갈 계획이 있는 부부다. 얌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동네 자랑이 한창이다. 바다에서 대어를 잡았던 낚시 이야기를 비롯해 바다 풍광이 유난히 좋다고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얌바가 아무리 좋아도 이곳을 떠나면 이웃 생각이 많이 날 것이라며 아쉬움도 토로한다.


젊었을 때 일본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이웃은 한국 이야기를 나에게 꺼낸다. 일본에 머무르면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한국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의 말투에는 일본보다 한국을 아래로 보는 생각이 묻어난다. 오래전 1980년대의 한국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해는 간다. 그래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한마디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등 조금은 과장해서 한국의 발전상을 이야기한다. 한국에 가 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잔을 비우는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며칠 전에 이사 온 사람이다. 이름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시드니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 나도 시드니에서 살았다고 하며 동네 이야기를 하니 이웃 동네에서 지냈다. 그리고 시드니를 떠나 할러데이즈 포인트(Hallidays Point)로 이사했다는 나의 이야기에 놀라는 표정이다. 그곳에 아들이 살고 있어 자주 다녔던 곳이라며 내가 살았던 작은 바닷가 마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인연이라고 하나, 오래전 시드니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냈고, 시드니를 떠나 살던 외진 동네 와도 인연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술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간다. 이웃을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 이웃들이다. 인생의 황혼을 구가하는 사람들이다.


취기가 있어서일까. 삶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수시로 떠오르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수없이 반복했던 나의 생각을 되새긴다. 자기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다.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이강진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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