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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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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버스나 기차에 올라보면 너나없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젊은 여인들은 한쪽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다른 손에는 예외 없이 색색의 무겁고 두툼한 휴대전화기를 들고 있다.


수시로 누군가와 통화하며 또 무슨 정보를 찾느라고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어떤 사람들은 통화할 때 목청껏 소리를 높여 주위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아마도 한국전쟁이 나기 전인 듯, 동네마다 젊은 청년들을 주야교대로 투입시켜 횃불을 높이 들어올리며 이웃동네 청년들에게 우리 동네는 이상없다고 전달…그럼 그 동네에서는 또 그 다음 동네청년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상없다고 전달하고 -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것이 당시 한국 농촌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것이다.


19세기에 모르스 부호가 사용되고 20세기엔 전화기가 발명되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었다. 70년대 후반 호텔 신라 개업 준비실에서 일할 때 삼성에서 임시 개발한 삐삐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업무 중에도 수시로 삐삐가 울리면 즉시 상무나 일본 오쿠라 호텔 팀장을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39년 전 호주에 처음 왔을 때 건축 현장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벽돌보다 더 큰 이동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일하는 것을 보았다. 이동통신 1세대는 1G 아날로그 방식이었고 그 후 2G, 3G, 5G로 발전하며 고속 인터넷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1990년 중반엔 전자메일과 화상통화가 발달하면서 많은 정보들이 순식간에 공유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WWW, 즉 World Wide Web을 통해서 이 세상은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를 맞이했던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국민의 98%가 사용하는 카카오톡 시대를 맞이하여 편리의 극치를 누리고 있다. 나는 요즘 아들, 며느리들과의 카톡 교환은 약간 뜸해진 반면, 손녀들, 특히 브리즈번에 있는 손녀들과 수준급 한영 카톡을 즐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열 네 살짜리 막내 손녀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그 수준이 놀랍다. 시드니의 큰 손녀도 이번 고교 졸업과 HSC 시험 ATAR 순위에서 전교 공동 수석을 차지하고 내가 칭찬을 많이 한 결과 카톡 회수가 늘었다.


우리 이웃집에 혼자 사는 그리스 처녀와는 이따금씩 전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이유는 우리가 여행으로 집을 비울 때 혹은 그녀가 집을 비울 때 우편함에 편지들을 수거해 줄 것과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통 내놓는 것을 부탁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문자를 보낸다. 한 번은 그녀가 그리스 신화를 쉽게 해설하여 나에게 보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이토록 편리한 세상이 되었을까.

옛날엔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전화놀이하면서 대나무 톨에 엷은 종이를 붙이고 거기다 가는 실을 연결하여 친구들에게 "아 잘 들립니까?' 소리치며 깔깔대던 추억이 새롭다.


첫사랑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배달부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젊은 날이 그리워진다. 호주에 있는 여러 채팅 그룹에 회원으로 되어 있는 관계로 많은 정보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카톡이 워낙 많이 돌아 무익한 부유물도 많다. 중국인들은 위챗(WeChat)을 많이 쓴다. 미국인들은 유튜브, Facebook,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등을 많이 쓴다.


미국에 본부를 둔 한인 친목단체의 경우 회원이 400명 가까이 되지만 실제 Active Member는 40% 정도이다. 한때 불량 멤버들이 문제를 야기한 적도 있지만 지금 잘 통제되고 있다. 동시에 선량하고 창의적인 회원들이 많아서 그 단체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한다.


아내는 5남매 중 장녀라서 그 딸들이 똘똘 뭉쳐 채팅방을 운영하는데 나는 끼워주지 않는다. 이유는 미국에 있는 외아들도 끼워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처제 중에서 제일 착한 셋째와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하는 채팅방도 있긴 하다.


카톡의 창업자 김범수- 그는 15년 전인 2010년 카카오톡을 창업하여 무료 메시징으로 한국의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였다. 그 후 발전을 거듭, 쇼핑 금융 콘텐츠 등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하고 AI 기술 도입 등 변화를 추구하여 2015년 한국 시장을 석권하였다. 카카오 열매의 달콤함과 토크- 말하기를 한국- K를 합성하여 Kakao Talk이라 이름 붙였다.


김범수는 1966년 전남 담양의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공대 관악캠퍼스 산업공학과 학사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오늘날엔 미화 50억불의 자산가가 되었다. 


횃불에서 5G까지, 세월은 멀리도 왔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사람을 향해 신호를 보내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편리한 세상 속에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속도가 아니라 온기다.

 

케네스강/ 글무늬문학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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