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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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힌 작은 노트가 있었다. 친구들, 친척들, 아이들 학교, 단골 미용실, 병원까지 손 글씨로 적어 둔 번호들은 생활의 흔적 같았다. 급히 연락할 일이 생기면 그 노트를 뒤적이며 번호를 찾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안도하곤 했다. 그 노트 속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내게도 자주색 겉장의 전화번호 수첩이 있었다. 얇은 종잇장 몇 장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내 삶의 결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 마음을 나눈 사람들, 청춘을 함께한 친구들의 이름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그 수첩은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인연들의 발자국이자, 세월의 무늬를 간직한 나만의 기록이었다.
이민 와서 짐을 정리하다가 전화수첩이 떠올랐다. 손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 가에 있겠지.’ 낯선 땅에서 살아내느라 그 존재조차 잊고 지냈다. 새 환경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길 즈음, 그 수첩이 문득 생각났다.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던 가방까지 뒤지고, 엎어서 털어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집 주소나 전화번호가 없으면 닿을 길이 없는 친구들, 기억의 끈을 붙잡고 숫자를 더듬어 보았지만 끝내 이어지지 않았고, 소중한 인연들은 결국 그리움으로만 남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잠시나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 문화센터의 꽃꽂이 강좌에 등록했다. 젊은 여자들 십여 명이 모인 교실은 배움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꽃 몇 송이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여자가 눈에 띄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온화한 미소를 지닌 그녀는 우리 반의 반장이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마음이 깊은 사람 같았다.
그 당시 시아버님과 함께 살던 나는 늘 바쁘고 경직되어 있었다. 강좌가 끝나면 차 한잔 나눌 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다독이며, 든든한 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녀의 온기 어린 말과 미소는 내 마음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꽃을 꽂고 차를 나누는 사이로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 날 복막염으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가 손수 음식을 준비해 나를 찾아왔다. 가져온 찬양 테이프를 내 가방 속에 넣어주며, ‘힘들지? 조금만 견디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곁에 있을게.’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녀의 위로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되었다. 병실 창문으로 스며든 따뜻한 햇살처럼, 그녀의 존재는 내 마음을 환히 밝혀 주었다.
그 후로 우리는 취미가 비슷한 내 친구 한 명과, 그녀의 친구 두 명이 더해져,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꽃 내음’. 다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다섯 엄마들은 봄이면 꽃이 만발한 공원을 거닐며 계절의 향기를 즐겼고, 여름이면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초원을 찾아다녔다. 겨울이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따뜻한 국물로 마음을 나누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은,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살아 있다.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그녀의 음식 솜씨는 자연스러운 품위와 격이 있었다. 조미료 한 줌 없이도 완성되는 옛스러운 맛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손맛이었다. 시골 시댁에서 올라온 신선한 농산물이 있으면, 가까이 살던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 주기도 했다. 가끔은 불러내 아파트 벤치에 앉아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사돈 맺자.’며 장난스럽게 주고받던 약속까지, 그 모든 순간이 이제는 그리움의 향기로 남아있다.
이정순 / 글무늬문학사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