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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과 자기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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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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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호주에 왔을 때, 예쁜 동네의 집들과 다양한 꽃과 나무들을 보며 산책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음식은 조금 달랐지만, 한국이 그립거나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호주에 적응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셈입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어떤 분들은 호주에 와서 한국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향수병에 걸리기도 하고, 고추장이나 김치를 찾으며, 가끔은 라면을 먹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을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적응’이 필요한 상황을 자주 경험합니다. 삶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면 그곳에, 새로운 직장을 다니면 그 직장에, 학교를 옮기면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에 적응해야 합니다.


외부 환경이 바뀌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를 ‘외적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인간관계, 경제적 압박, 직업적 스트레스, 정신적 외상, 기타 환경적 사건 등이 포함됩니다. 반면, 생각이나 공상, 감정, 불안, 고통, 신체 감각 등 내면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내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외적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개인마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를 사용합니다. 방어기제란 외부의 스트레스나 내적인 갈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대응 방식입니다. 모든 사람이 방어기제를 사용하지만, 어떤 방어기제는 적응에 도움이 되지 않아 삶을 어렵게 만들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분열(splitting)’이나 ‘억압(repression)’ 같은 방식은 적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분열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 대상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가진 존재로 보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한쪽으로만 인식합니다. 이는 ‘대상 항상성’이 결여된 상태로,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덜 적응적인 방어기제로는 분열, 투사, 투사적 동일시, 병적인 이상화, 평가절하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녀를 잘 돌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이상화하고, 아버지를 극단적으로 나쁘게 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또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이성의 대상이 가진 다양한 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예로는, 어제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완벽하게 좋아 보였지만, 아주 작은 실수를 한 이후로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입니다.


그 외에도 덜 적응적인 방어기제로는 부정, 해리, 행동화, 퇴행 등이 있습니다. 부정은 일어난 일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해리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자아가 현실의 일부를 회피하여 잊어버리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A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지만, 그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로 기억을 회피했다고 말합니다.


반면, 조금 더 적응적인 방어기제도 있습니다. 감정의 고립(isolation of affect), 지식화(intellectualiz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 신체화(somatization),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외현화(externalization), 동일시(identification)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감정의 고립이나 지식화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하거나, 감정을 배제하고 지적으로만 설명하려는 방식입니다. 신체화는 정신적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장 적응적인 방어기제로는 유머(humour), 이타주의(altruism), 승화(sublimation), 억제(suppression) 등이 있습니다. 유머는 자신의 실수나 상대의 실수를 웃음으로 풀어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타주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사회봉사 같은 긍정적인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승화는 안데르센처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글이나 이야기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방식입니다. 억제는 힘든 일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그 감정을 일시적으로 옆으로 제쳐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 방어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전략입니다. 보다 나은 적응을 위해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간다면, 더 적응적인 방어기제를 활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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