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숙 칼럼리스트

새해의 새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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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라이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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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365일이 시작되었지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의 눈 부심은 달라진 게 없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은 순간들에 맞닥뜨리지만, 세상사가 늘 그렇듯 아픈 상처와 기억은 남겨지기 마련이다. 삼십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나의 칼럼을 올렸던 시드니의 한 신문사가 문을 닫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의료분쟁으로 인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큰언니의 이른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내 나라 땅에서는 12.3 계엄령이 선포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도대체 “왜, 왜? ”라는 아픈 의문만이 가슴을 찌르며 또 하나의 해묵은 앨범 속의 사건이 되는 기록을 만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방송하는 해외용 FM 라디오를 즐겨듣는 편인데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불확실성을 가진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방송사에서 어김없이 틀어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바로 국민가수로 알려진 나훈아의 “테스형!”이다. 가사는 간단하지만, 상당히 사회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가사 일부를 적어본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아, 테스형 아프다


오랜 옛날에 세상을 떠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애절하게 부르며 울부짖는 듯한 가수의 노래가 이렇듯 애타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나의 취향에 맞는 노래는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상을 보면 누군가에게 속 터지는 호소를 하고 싶은 일반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최근에 발생한 역사적인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 시간에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국정부가 개최한 통일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있었다. 장난이 지나친 무개념의 사람이 유튜브에 올린 뉴스라고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광화문이나 남대문 시장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방인이 느끼는 괴리감은 너무나 컸었다. 사십여 년 만에 체감하는 영하의 날씨, 한국의 겨울이 무척 춥게 느껴졌다. 120년 만에 내렸다는 11월의 첫눈은 서울거리의 풍경을 더 차갑고 매정하게 바라보게끔 했다.


TeresaCho_1103_01.jpg


사람 사는 냄새가 푸~울~풀 풍기는 삶의 현장을 보고 싶어서 남대문 시장으로 가보았다. 거리에서 파는 음식도 먹고 싶었고, 손뼉을 치며 떠들썩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활기찬 시장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 모습은 나의 머리에 새겨진 오래된 정겨운 그리움이며 추억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낱 어리석은 꿈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확성기 소리와 거리에서 나부끼는 붉은 색, 하얀색 플래카드와 자동차 도로를 점령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무질서한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비난은 비난을 부르고, 비판은 비판을 다시 불러오는 그 함성들이 너무나 듣기 싫었다. 그리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언니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기대 할 수 없는 희망을 바라며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던 언니는 그렇게 가버렸다. 


TeresaCho_1103_02.jpg


사계절은 어김없이 변화하며 우리를 찾아온다. 지구가 아파서 변덕을 자주 부리기는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날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다 보면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며 그 속에서 진리와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기억하자. 힘든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해의 새날을 열심히 기다려본다.


황현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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