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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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말보다 화면이 더 바쁜 시대다. 집안에 함께 있어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휴대전화 속 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식탁에 둘러앉아 있어도 고개를 맞대기보다 각자 디지털 기기 속으로 시선을 옮긴다.
식구가 많아도 나가고 들어올 때 짧은 인사 몇 마디 나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화면을 스크롤 하고 알림 창을 들여다본다. 말이 사라진 자리는 서서히 침묵으로 채워지고,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소통’이라는 단어를 잃은 채, 서로의 존재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공허한 메시지 속에서 함께 있어도 홀로 있는 듯한 고립감이 마음에 스며든다.
말이 있어도 제대로 닿지 않는 시대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말없는 존재에게서라도 위로나 교감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반려’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그 빈자리를 채운다.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반려식물, 반려 해양생물, 반려 곤충, 반려버섯, 심지어 미생물까지 품에 안는다.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감정을 흉내 내고 대화를 이어주는 반려로봇까지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생명이 아니어도 괜찮다.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다양한 반려들을 통해 잊고 지내던 ‘소통의 온도’를 다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도 반려식물이 있다. 하루 중 가장 오래 눈을 맞추는 부엌 창가, 그 곳에 자리한 아프리칸 바이올렛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지인이 이사가면서 주고 간 꽃이다. 작은 도자기 화분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저 물을 챙겨주는 정도의 관심을 주었을 뿐인 데도, 몇 년째 꽃이 피고 또 피고 있다.
어느 날, 반쯤 벌어진 꽃망울을 바라보다가 외로운 생각이 문득 났다. 근처 화원에 들러 바이올렛을 하나 더 샀다. 쓸쓸히 혼자 있는 꽃을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또 하나의 존재를 곁에 두려는 나의 허전함이었는지.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머그잔에 담긴 꽃은 보라색의 화사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두 화분을 창가에 나란히 놓고 보니, 같은 보라색이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먼저 있던 꽃은 홑겹이지만 꽃잎이 크고 윤곽이 선명했다. 잎사귀는 도톰하며 단단해 보였다. 말수는 적어도 진심을 숨기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고, 오랜 시간 곁에 있어도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고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 같았다.
반면 새로 사온 꽃은 보랏빛으로 피어 오르다가 끝으로 갈수록 은은한 흰색으로 번졌고, 겹겹이 펼쳐진 꽃잎은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의 치마폭 같았다. 작은 바람에도 살짝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숨결을 지닌 듯한 생동감이 흐르고,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는 고요한 온기를 전하는 듯했다.
꽃을 바라보다가, 꼭 한 쌍의 남녀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로의 색을 가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있으니 더 빛나 보였다. 어느새 이 두 송이 바이올렛은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반려’가 되었다. 말없이 하루를 받아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존재, 저물어 가는 하루의 빛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시간에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쉼이 되었다.
오늘도 두 화분이 나의 하루를 살며시 밝혀 준다. “잘 잤니?” 꽃 잎이 가볍게 흔들리기라도 하면, 마치 대답을 들은 듯 마음이 환해진다. 외출하는 날이면 꽃 잎을 살짝 건드리며 “오늘은 약속이 있어 오래 못 본다, 나중에 보자”. 내가 건넨 인사는 꽃에게도 내게도 하루의 리듬이 되어 생활의 따스함을 더해준다.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레 부엌으로 향한다. 꽃이 시들진 않았는지, 햇빛을 잘 받았는지 살펴본다. 꽃을 돌보는 일은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물을 주고 잎을 정리하는 동안, 마음이 서서히 가라 앉으며 하루의 소음이 멀어진다. 급하던 생각들은 제자리를 찾아 앉고, 차분해진 마음에 평온이 내려 앉는다.
사람과의 대화는 때때로 신중을 요한다. 말의 온도를 조절해야 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무심코 건넨 말이 상처가 될 때도 있고, 말을 꺼내기 전 오래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줄어들고, 관계는 조용히 멀어진다. 마음을 나눌 틈도 서서히 사라진다.
꽃 앞에서는 다르다. 실수해도 괜찮고, 뜸하게 말을 걸어도 상관없다. 꽃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 침묵 자체가 귀하고 마음을 다독여 준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어주는 데 꼭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없는 시간속에서도 서로의 존재가 느껴지고, 진실한 연결이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화분 앞에서 깨달은 이 마음이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밝혀주고, 꽃이 건네던 다정한 위로를 이웃에게 건넬 수 있기를, 아름다운 두 송이 반려 꽃 앞에서 나에게 하는 다짐이다.
이정순/글무늬문학사랑회